오피니언 사설

한국 영화의 가능성 보여준 '왕의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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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왕의 남자'의 성공 원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다. 연극 '이(爾)'의 희곡이 원작으로, '이'는 2000년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광대 두 명과 왕, 후궁 사이의 동성애와 질투가 두 겹의 삼각관계 틀에서 숨가쁘게 전개된다. 권력에 대한 통렬한 풍자도 최근 정치 상황과 맞물리면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신인급인 이준기(공길역)의 예쁘장한 외모와 연기는 신세대부터 중년 여성들의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가 한국 영화의 흥행문법을 깬 것으로 평가한다. 그간 우리 영화는 분단을 소재로 한 한국판 블록버스터가 흥행을 주도해 왔다.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쉬리'나 관객 1000만 명 시대를 연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가 이 같은 흥행공식에 충실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조폭들의 세계를 다룬 폭력물이 판을 쳤다. '친구''조폭 마누라'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한국 영화는 뚜렷한 흥행작 없이 현재 방향을 모색하는 단계다.

'왕의 남자'의 성공은 한국 영화의 앞날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무엇보다 돈과 스타만이 흥행을 보장하는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토리가 탄탄하고 연출이 뛰어나면 관객은 호응한다. 우리 전통문화도 잘만 다루면 얼마든지 대박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일깨워 준다. 우리 영화인들은 '왕의 남자'가 제시하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