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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맹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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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실험 데이터를 날조해 논문을 조작하는 부정행위는 세계 과학계에 드문 일은 아니다. 어김없이 개인의 불명예와 연구계 퇴출로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이번의 우리처럼 한 과학자의 논문 조작으로 온 나라가 휘둘리고 국민까지 편을 갈라 법석을 떠는 경우는 일찍이 예를 찾기 힘들다. 대통령에서부터 정치권.정부.학계.언론.국민까지 조작 논문에 철저히 놀아났고, 수백억원의 국고지원에다 노벨상 로비 시도 등 정부 스스로 영웅만들기에 앞장서 왔다. 황 교수와 함께 우리의 국가 시스템과 정부의 관리능력 또한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과학적 검증 결과 논문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고 본인들이 이를 시인하면 연구자로서의 생명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지지자와 여론이 '대한민국 기술' 운운하며 황 교수의 재기를 고집하는 상황은 또 하나의 웃음거리다. 과학적 진실이 여론으로 판가름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서울대 조사 결과보다 황 교수 해명을 더 믿는다는 식의 여론몰이도 그치지 않는다. 황 교수에 대한 미련과 동정을 넘어선, 일종의 '줄기세포 민족주의'다.

논문 철회로 황우석 신화는 몰락했다. 그러나 그 신화를 만든 사회적 요소들은 우리 주변에 지금도 건재하다. 뭉뚱그려 표현해 '황우석 애국주의'다. 줄기세포 연구는 국가산업의 차원을 넘어서는 인류사적 대장정이다. 줄기세포를 확립했다 해도 장기로의 분화와 임상시험 등 '열두 대문'을 무시로 넘어야 하고 첨단 의학 및 과학 인프라의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그러려면 줄기세포 연구가 대한민국의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하고 여기에는 연구 투명성과 국제 검증 및 협력을 통한 세계 과학계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한국인의 영웅이 아닌 세계인의 영웅이 곧 국익을 위하는 진정한 길이다.

의술은 기술만이 능사가 아니며 인체와 인간을 소중히 하는 영혼이 깃들어야 한다. '기술은 오히려 쉽다. 휴머니티가 더 어렵다'는 생명공학 연구에 철칙이다. 의학연구자는 대중의 스타가 아니며 대중에게 성급한 기대와 환상을 불어넣어서는 안 된다. 다산 정약용은 의서를 지으며 제목을 '촌병혹치(村病或治)'로 붙였다.'혹 시골사람들의 병이 치료될 수도 있으리라'는 뜻이다. 세계 최고라는 자만이나 예언자적 복음보다는 '혹치'의 겸손이 요구된다.

더구나 동물 장기의 인간 이식은 아직도 상상의 영역이며 돌다리를 열 번도 더 두드려야 한다. 에이즈와 조류인플루엔자 등 신종 질병의 창궐은 동물과 인간 간의 생태학적 종(種) 간 경계가 깨진 데서 연유한다는 섬뜩한 경고도 있다.

줄기세포를 무슨 공산품처럼 국가전략산업으로 밀어붙이는 발상은 무모하다. 금 모으기식 난자 포퓰리즘은 기증 자원자의 숭고한 희생정신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론 '엽기 한국'으로 비쳤었다. 세계의 연구자에게 난자제공센터가 되는 줄기세포허브가 한국의 국익인가. '대한민국'과 '세계 최초'라는 '주술'에서 깨어나 과학적 검증을 가로막은 한국적 요소들에 대한 철저한 사회적 검증을 통해 국가적 자정(自淨)능력을 세계에 내보일 때 '줄기세포 한국'의 미래는 약속될 것이다.

변상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