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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수싸움 치열한데 정작 반기문 속내는 오리무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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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4 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이 나흘 앞(12일)으로 다가왔다. 대선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정치권 여러 세력이 반 전 총장을 상수로 놓고 다가오는 빅뱅 시나리오를 가다듬고 있다. 대선판의 밑바닥이 본격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이 구상할 수 있는 큰 흐름은 ^더불어민주당·새누리당이 아닌 제3지대에서 범보수·중도 대연합을 이루거나 ^국민의당 또는 개혁보수신당 입당 후 내부 경선에 나서는 그림이다. ^자신을 구심점으로 충청권 기반 신당을 창당해 비문재인 그룹과 연대·통합을 이뤄가는 시나리오도 주요 옵션 중 하나로 거론된다. 각각의 경우마다 대선주자군과 킹메이커의 의중이 맞아떨어질 수도, 갈등과 결별의 불씨가 될 수도 있는 만큼 반 전 총장의 귀국 후 행보는 향후 정파 간 합종연횡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당분간 저강도 정치 행보 주력할 듯]
반 전 총장의 취약점은 국내 정치적 기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대선 경쟁자나 킹메이커들이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거나 평가를 할 때 늘 선을 긋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유엔 사무총장 취임 이전엔 의원과 외무공무원으로 교류는 있었지만 (정치적 역량과 권력의지 등은) 기본적으로 잘 모른다. 반 전 총장은 미지수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유엔 사무총장을 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반 전 총장이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를 이끌 의지가 있는지조차도 전혀 모르는 상태”라고 했다.


일단 반 전 총장은 12일 귀국한 뒤 14~15일 충북 음성과 충주에서 귀국 보고회 성격의 대중행사를 열 계획이라는 얘기도 돌고있다. 그 이후에도 대학을 돌며 강연 등을 통해 청년층과 스킨십에 나서는 등 저강도 정치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게 반 전 총장 주변의 공통된 전언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반 전 총장이 설 민심을 관망한 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등 메가톤급 변수가 정리될 때까지 제3지대의 판을 키우는 행보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기간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을 규합하면서 개혁보수신당과 국민의당 사이에서 몸값을 키우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당장은 정치권에 바로 접목해 가지와 줄기를 뻗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이럴 경우 선택은 제3지대에서 거점을 마련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현재 친문·친박 세력을 제외한 광범위한 그룹이 제3지대로 분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제3지대에서 반 전 총장을 포함하는 연대 또는 통합 방식의 정계 개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경우 잇따른 컨벤션 효과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제3지대의 구심력, 분권형 개헌]
제3지대가 구심력을 키우는 또 다른 고리는 분권형 개헌이다. 그런 점에서 김종인 전 대표가 반 전 총장의 연대 1순위로 꼽힌다. 김 전 대표는 “국민은 안정감을 주는 지도자를 기대하는데 반 전 총장이 거론되는 것도 그런 연장선”이라며 반 전 총장을 띄웠다. “만나자고 그러면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며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임기 단축 개헌을 주장해왔다. 반 전 총장도 뉴욕 기자회견에서 “(현재 헌법은) 1987년 개정된 것으로, 우리가 몸은 많이 컸는데 옷은 안 맞는 상황”이라며 보조를 맞췄다. 두 사람이 개헌을 매개로 큰 틀의 공감대를 이룰 경우 제3지대 연대론도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 김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먼저 들어보는 게 순서”라며 섣부른 전망을 경계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이 연대할 경우 외교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브랜드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윈윈하는 구도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반 전 총장이 제3지대에 둥지를 틀고 대연정을 모색하려면 김 전 대표와의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가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여권 관계자는 “반 전 총장으로선 제3지대에서 개헌을 고리로 중도보수통합 세력이 함께 경선하는 시나리오가 최선일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혹독한 검증 공세 속에서 지지율이 버텨줘야 하는데 도전이 만만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헌을 고리로 반 전 총장과 적극적 연대를 꾀하고 있는 또 하나의 그룹은 손학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국민주권개혁회의다. 손 전 대표는 “새로운 나라의 개혁을 위해 일하겠다면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다”며 고삐를 당기는 모습이다. 손 전 대표는 2~3월 정치권 빅뱅을 주장하고 있다. 1차 관문은 국민의당과의 연합이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당 대 당 통합이다. 이를 위해선 민주당 의원들이 탈당해 손 전 대표 진영에 합류해야 하는데, 현재 민주당 지지도가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몇 명이나 탈당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손 전 대표가 의미 있는 규모의 의원 수를 확보해 국민의당과 연대 또는 통합에 성공할 경우 반 전 총장과 김 전 대표를 아우르는 ‘빅텐트론’이 한층 힘을 받게 될 것으로 손 전 대표 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반 전 총장의 셈법이 복잡해진다. 국민의당과 손 전 대표 세력의 연대가 신당행 또는 창당 못지않게 주요 선택지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양날의 칼’ 보수신당 입당]
반 전 총장이 만약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하는 시점에 새누리당에서 추가 탈당이 이뤄진다면 정치권의 시선은 반 전 총장과 개혁보수신당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의 핵심 변수인 정계 개편의 추동력이 솟아나는 현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친박계 일부와 충청권 의원들의 추가 탈당 규모에 따라 국민의당을 제치고 원내 제3당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반 전 총장이 나름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반 전 총장에게 적극적인 구애에 나서고 있다. “반 전 총장이 보수신당과 함께하기를 바란다”며 “사당화한 새누리당엔 안 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도 “김 전 대표가 반기문 캠프를 차려줄 것으로 믿는다”고 화답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반 전 총장이 온다면 김종인·손학규·국민의당과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 전 총장을 지렛대로 정계 개편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처럼 개혁보수신당에 입당하는 게 반 전 총장에겐 가장 현실성 있고 정치적 부담도 적은 옵션이지만 문제는 경선 리스크다. 개혁보수신당에는 유승민 의원을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잠재적 대선후보가 여럿 포진해 있다. 인지도에서 앞서 있다지만 반 전 총장이 계급장을 떼고 동일한 조건에서 경선에 나설 경우 국내 정치 기반과 조직력에서 앞서는 다른 주자들에게 따라잡힐 수 있다는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높은 지지도를 무기 삼아 경선을 피하려 할 경우 다른 대선주자들의 협공에 시달릴 수 있는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당장 유 의원은 “반 전 총장이 신당 경선에 참여한다면 언제든 환영할 것”이라면서도 “아직 공식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고 어느 정당과 함께할지도 미정인 상황인 만큼 신경 쓰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기문 신당’은 이런 부담과 변수가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주요 선택지로 꼽힌다. 조기 대선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시간에 쫓기고 있지만 독자세력화에 성공할 경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정 시나리오를 주도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여권의 한 충청권 의원은 “신당 출범 과정에서 반 전 총장이 난관을 극복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범위한 지원 세력을 정치 결사체에 흡수하는 과정을 통해 시험대에 오른 반 전 총장의 정치력도 연단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관건은 반기문 신당의 정치력이다. 반 전 총장을 옹립하려는 충청권 의원들을 규합한 신당에 그칠 경우 영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류 때문에 정치권 외곽의 이른바 ‘반기문팀’ 내에서는 아직 신당 창당 문제가 정식으로 논의되고 있진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기문 지원팀의 한 관계자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잠시 언급됐을 뿐 진지하게 신당의 득실을 따져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내부 의견도 엇갈려]
기존 야권의 반응도 관심사다. 대선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측 내부에서는 ‘반기문 바람’이 결국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본격적으로 대선판에 뛰어들어 혹독한 검증을 거치다 보면 인지도에 기반한 지지도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진단이다. 문 전 대표도 지난 6일 “반 전 총장은 변화·검증·준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미지수”라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런 가운데 반 전 총장이 어느 세력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파괴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분위기 또한 감지된다.


국민의당 기류도 변수다. 반 전 총장에게 비교적 호감을 보여온 박지원 전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반 전 총장 등 충청권과의 ‘뉴DJP 연합’에 관심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킹메이커로서 반 전 총장의 상품성을 인정하면서 안철수 전 대표와의 경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문제는 국민의당 안이냐, 밖이냐는 점이다. 박 전 위원장은 일단 반 전 총장의 정체성이 모호하고 호남 민심의 향배 등을 들어 연대를 위해서는 고려 요소가 많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반 전 총장의 국민의당 입당에 대해선 문을 닫지 않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연대 불가론을 강조하며 견제 입장이 비교적 뚜렷하다. 안 전 대표는 독자 대선 출마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측근인 김경록 대변인은 “반 전 총장은 정체성 차원에서 국민의당과 맞지 않는다는 게 안 전 대표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도 최근 사석에서 “나는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대통령 구상을 미리 밝혔다”거나 “시험은 평소 실력으로 보는 것이지 벼락치기 한다고 되겠느냐”며 반 전 총장 대망론의 현실화 가능성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여러 정치 세력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감안할 때 반 전 총장은 일단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한 달여 동안 민생투어 등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장은 “비정규직 현장이나 노량진 고시촌 등을 찾아 젊은 층의 고충을 직접 듣고 해법을 찾는 행보를 통해 취약한 20~30대 지지 기반을 추스르는 전략도 반 전 총장의 주요 선택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cheong.yongw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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