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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복도 대신 거실, 따뜻함 담은 마을 짓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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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14면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 다가올 2026년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65세가 된 사람을 노인이라고 분류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한 ‘100세 시대’도 도래했다. 노인 관련 정책이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할 시점, 현실적인 궁금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노인들은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노인들의 행복한 여생을 위해서는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야 할까. 한 달 생활비가 수백만 원이 들거나 평당 분양가가 만만치 않은 실버타운이 공간적인 해법일까.


문 연 지 이제 막 1년이 된 경기 부천의 노인요양시설 ‘인자인(仁慈人)케어센터’는 그런 질문에 대한 어떤 대답이다. 일상적 삶을 담아내기 위한 실험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기업인과 건축가는 ‘노인을 위한 집’을 디자인하는데 의기투합했다. 건축주는 생활정보지 벼룩시장을 창간한 주원석(59) 미디어윌 회장이고, 건축가는 운생동의 장윤규(53)ㆍ신창훈(47) 공동대표다. 건축주는 수용소가 아닌 삶터로서 노인요양시설의 새 모델을 만들어달라 요청했고, 건축가는 5층 건물 안에 살던 집을, 그리고 마을을 그대로 옮기는 데 도전했다.

[집을 그대로 옮긴 ‘유닛 케어 시스템’ 국내선 드물게 도입]
인자인케어센터는 부천시 괴안동 공원 모퉁이에 자리 잡았다. 지리적으로 경기도지만, 바로 옆 동네가 서울 구로구 항동이다. 센터는 멀리서 봐도 대번에 눈에 띄었다. 주변 아파트와 비교하면 더욱 남다르다.


대지는 정방형(면적 1367㎡)이다. 반듯한 땅에 네모반듯한 건물을 지어 올릴만도 했건만, 건물은 박공형 지붕의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 전체를 이룬 듯 보였다. 5층 건물의 외관은 한마디로 울퉁불퉁하다. 가운데 축에 삼각 지붕의 집 여러 채가 포도 송이처럼 올망졸망 달린 것 같기도 했다.


단순히 예쁘라고 디자인한 외관이 아니다. 내부 디자인이 밖으로 반영된 결과다. 인자인케어센터는 국내 노인요양시설 중에서 드물게 ‘유닛 케어 시스템(Unit Care System)’을 도입했다. 집을 하나의 유닛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병원처럼 복도를 따라 방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집과 비슷하게 거실과 방이 있는 작은 규모의 공간으로 구획해 관리한다. 유닛마다 요양보호사가 배치돼 노인들을 보살피는 구조다. 일본의 노인요양시설에서 많이 쓰고 있는 시스템이다.


인자인센터는 2층부터 4층까지는 층마다 네 개의 유닛이, 5층에는 세 개의 유닛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 한 층마다 3~4채의 집이 있고 건물 전체로 보면 한 마을을 이루는 형태다. 건물 한가운데에는 94㎡(약 28평)에 달하는 다목적 홀이 있고, 유닛의 출입문은 홀의 네 귀퉁이에 나 있다. 홀에서 각 유닛으로 출입하는 구조라 복도를 따로 두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유닛에는 다섯 개의 방과 거실, 욕실 및 화장실 등이 있다. 장 대표는 “복도식이 아닌데다 방마다 창을 내기 위해 건물 입면을 울퉁불퉁하게 한 터라 뚫리고 비어 있는 공간이 많은 건물이 됐다”며 “만약 꽉 채웠을 경우 240개가 넘는 침대를 놓을 수 있지만 인자인에서 요구한 침대 수는 180개였고, 그에 맞춰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주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부천이 제 고향이에요. 벼룩시장도 부천에서 시작했고, 시민들이 사랑해줘서 벼룩시장을 토대로 미디어윌의 여러 사업을 일구게 됐죠. 사회봉사 차원에서 부천에 노인요양시설을 지은 것도 있고, 고령화 시대의 사업모델로도 봤어요. 기존 시설 중에는 열악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마지막 삶터일지도 모르는 곳인데, 품위있게 살 수 있는 요양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시설에 수용되거나 병원에 입원한 느낌이 들지 않는 집 같은 곳이요.”


주 회장은 세 군데 설계사무소를 지명해 설계안을 받아 본 결과 운생동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름다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건축가에게 주문한 것은 많지 않았다. ‘유닛 케어 시스템’을 적용해 평면을 짤 것, 침대 수를 180개로 할 것 등이다. 노인요양시설 프로젝트가 처음이라는 두 건축가는 방대한 리서치 작업에 들어갔다. 해외 실버시설 사례도 조사했다. 그 중 유럽 등 복지 선진국의 노인 복지 정책의 모토인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에 꽂혔다. 노인들이 살아온 지역과 집, 이웃들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하자는 철학이다.


신 대표는 “핀란드 공동체 마을인 로푸키리(Loppukiri)의 노인들이 행복한 이유는 살던 집과 지역사회 친구들이 있는 곳에 있기 때문이며 행복해야 건강이 유지되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집과 같은, 집이 모여 이룬 마을과 같은 노인요양시설이 디자인 컨셉트가 된 배경이다. 장 대표는 “집에서 집으로 옮겨 온 듯한 느낌이 들게 내부 디자인을 했고, 외관도 집들이 모여 있는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공원 훤히 보이는 방, 거실에선 흥겨운 트로트 가락]
인자인케어센터를 찾은 4일 오전, 5층의 한 유닛에서는 익숙한 집안 풍경이 펼쳐졌다. 여섯 할머니가 거실 소파, 식탁 의자에 앉아 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흥겨운 트로트 가락이 거실에 울려퍼졌다. 방마다 나 있는 창문 덕분에 밖의 공원이 훤히 보이고 햇볕이 잘 들었다. 거실을 둘러싸고 있는 방은 4인실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2인실이다. 총 12명의 노인들이 한 유닛에서 생활한다.


점심 시간이 되자 침대에서 움직일 수 없는 어르신을 제외하고 모두 거실로 나와 함께 식사를 했다. 인자인케어센터의 조동제 대표는 “공간이 부족한 요양시설의 경우 침대에서 TV보고, 식사하며 방에서 나올 일이 없는데 살던 유닛 구조에서는 집에서처럼 생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센터에서 생활하는 어르신의 평균 나이는 84세다. 여성 비율이 70%에 달한다. 2015년 11월 말에 문을 열어 지난해 5월 정원이 꽉 찼다. “대기자만 200명 가까이 된다”는게 주 회장의 귀띔이다. 한 달 생활비(본인 부담금)는 4인실 기준 60여만원이다. 조 대표는 “4인실 기준 가장 저렴한 요양시설이 50만원대이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시설의 경우 한 달 생활비가 700만원인 곳도 있다”고 말했다. 요양원도 양극화 시대인 셈이다. 주 회장은 “미래에 우리 모두의 집이 될 요양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너무 적다”며 “노인들에게 어떤 공간과 서비스가 필요한 지 꾸준히 논의해야 하는데 노인들을 요양원에 맡겨놓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센터를 돌아보면서 요양원과 가정집의 차이점을 찾아보려 애썼다. 노인을 위한 집에는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할까 싶어서다. 문턱이 없는 문, 벽마다 설치된 안전바, 텃밭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옥상정원, 층의 다목적홀에 설치된 족욕 및 찜질실, 지하의 물리치료실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면회시간은 제한이 있는지, 외부음식은 반입이 되는지, 어떤 단체 프로그램이 있는지 등 어느새 질문은 시설에서의 단체생활로 초점이 옮겨졌다. 이때 조 대표의 한마디가 다시 집을 생각하게 했다.


“사실 하드웨어는 기본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보살피다 보니 따뜻한 손길 자체가 좋은 서비스에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집이고, 따뜻한 눈빛ㆍ손짓으로 가족처럼 살피는 게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요양원에서 중요합니다.”


노인을 위한 집의 가장 기본 덕목은 집다운 집, 따뜻한 집에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살고 싶어하는 집과 같은 ‘집’ 말이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나르실리온 포토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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