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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정담] “외교관이 80%” 반기문 캠프, 글로벌 스펙만 못한 정치 감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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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물 반(半), 고기 반(半)이 아니라 외교관이 80%를 넘는다.”

김숙·오준 등 광화문팀 포함해
정책팀·원로자문까지 외교관
돈 수수의혹 뒤늦게 정정 보도
반 전 총장 귀국일 놓고 혼선
외교관 그룹 2선 후퇴설도 나와
곽승준·이상일 등 캠프에 합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예고한 귀국일(12일)이 엿새 앞으로 다가온 6일 현직 고위급 외교관이 본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반 전 총장을 지원하는 ‘반기문 팀’ 대부분이 외교관 출신들로 구성돼 있는 걸 이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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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오준 전 유엔 대사, 김원수 전 유엔 사무차장, 김봉현 전 호주대사 등 외교관 후배 4인방을 지칭하는 광화문팀,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과 정태익 전 러시아 대사 등이 리더인 정책총괄팀, 노신영·한승수 전 총리 등이 이끄는 원로자문팀 모두 외교관 출신이 주축이다.

지난 10년간 서울을 비운 반 전 총장은 대선 준비의 상당 부분을 이들에게 의지해 왔다. 반 전 총장이 지난해 말 뉴욕을 방문한 새누리당 정진석 의원을 통해 ‘정치적 대통합, 경제·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메시지를 제시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의 힘이 컸다. 유 전 장관 등이 지난해 여름부터 줄기차게 제안했던 화두를 반 전 총장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외교관 출신들이 밀집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두고 내부에선 “외교관 선후배들이 가장 앞줄에서 돕는 건 당연하다”는 주장과 “일반 국민들의 눈에 특권층으로 비춰지는 외교관들이 전면에 서면 될 일도 안 된다”는 반론이 충돌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국제 담론엔 능하지만 정무적 판단이나 메시지 관리에 익숙지 않은 외교관 출신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빚어지는 시행착오도 그동안 적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시사저널은 반 전 총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의 반기문팀이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기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 건 그로부터 11일이 지난 뒤였다. 팀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다 보니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반 전 총장의 귀국일 자체를 놓고도 혼선이 잇따랐고, 귀국 후 일정을 놓고도 여기저기서 다른 얘기가 나왔다.

결국 “외교관만으로는 힘들다”는 인식이 힘을 얻으면서 최근 각 분야 전문가들을 새로 영입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합류했다. 그는 평소 뉴욕을 오가며 반 전 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자주 만나 국제경제 문제를 조언하다 이번에 본격적으로 대선준비팀에 들어갔다. 또 이상일 전 새누리당 의원을 전략과 메시지 분야 책임자로 영입했다. 여기에 언론 전문 변호사와 대학 교수 1명도 수혈해 김숙·김봉현 전 대사 등이 이끄는 광화문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동양인 최초로 CNN 서울지국장을 지낸 손지애 전 아리랑TV 대표도 곧 이 회의체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엔 외교관 출신들의 2선 후퇴설까지 나오고 있다. 반 전 총장의 외교관 출신 후배들 간, 또 반 전 총장의 선후배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여의도에 번져 나가면서다. 반 전 총장 귀국 이후 캠프 합류를 벼르고 있는 정치인 출신 인사들 사이엔 “외교관 출신 후배들 사이에 신경전이 과열돼 심지어 반 전 총장 귀국 후 부인 유순택 여사를 누가 모시느냐를 놓고 경쟁이 붙었다더라” “외교관 출신들 사이에 알력이 심해져 반 전 총장이 이미 ‘외교관 후배들이 만든 팀은 해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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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전 총장의 귀국 준비를 주도해 온 김숙 전 대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는 소수의 외교관 출신들이 반 전 총장을 보좌했다면 귀국 후엔 수백 명이 될 텐데 2선 후퇴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명박 정부)은 “만약 머리가 굵은 외교관 출신들이 서로 머리 역할을 하겠다고 싸운다면 캠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승욱·허진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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