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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통 안고 법정 온 성준이 ‘옥시 7년형’에 담담한 눈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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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임성준군(휠체어)과 어머니 권미애씨(왼쪽)가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 1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임성준군(휠체어)과 어머니 권미애씨(왼쪽)가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 1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휠체어에 앉은 채 법정에 들어온 임성준(14)군은 자신의 앉은키와 비슷한 산소통을 안고 있었다. 산소통과 코를 연결해주는 튜브에 의지한 채 이따금 거친 숨을 내쉬었다. 캐릭터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해맑게 웃는 표정은 곁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 권미애(40)씨와 대비됐다. 갓난아기 때부터 독성이 있는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됐던 임군은 생후 14개월에 급성호흡심부전증을 진단받고 항상 산소통을 끼고 살았다.

신현우

신현우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창영)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신현우(69)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공론화한 지 5년 반 만이다.

법원, 신현우 전 대표 과실치사 유죄
“검증도 안 하고 안전하다고 광고
피해자 원인도 모른 채 극심한 고통”
살균제 사태 공론화 5년 만의 판결
존 리 전 대표에겐 “증거 불충분” 무죄
방청석 “양심은 알고 있겠지” 탄식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충분한 검증 없이 제조·판매해 소비자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발생시켰다”며 “심지어 제품에 ‘아이에게도 안심’ 등의 문구를 표시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게 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 부장판사는 “피해자들은 원인도 모른 채 호흡곤란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다가 결국 사망하거나 중한 장애를 얻었고 가까이서 그 모습을 지켜본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의 크기도 함부로 짐작하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피해자 상당수는 아이들이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한 부모였다. 이들은 결코 본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책하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법원은 신 전 대표의 혐의 중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상 사기 등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신 전 대표는 유죄로 인정된 부분에 대해서는 최고 법정형인 7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고의로 피해자들을 속여 돈을 편취할 의도가 인정돼야 하지만 신 전 대표 등은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을 막연히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 전 대표의 후임이었던 존 리(48) 전 대표에게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리 전 대표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외국계 임원들의 검찰 조사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거라브 제인(48·인도) 전 옥시 대표는 한국 검찰의 소환 요청에 불응하고 ‘잘 몰랐다’는 내용의 서면답변만 했다.

방청석에선 크고 작은 탄식이 나왔다. 5년 전 두 살짜리 딸 최다민양을 잃은 김아련(40)씨는 피고인석을 향해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 네 양심은 알고 있겠지”라고 소리쳤다. 마스크를 쓰고 있던 몇 명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임군은 흐느끼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이날 법원은 함께 기소된 세퓨의 오모(41) 전 대표에게 징역 7년, 자체 브랜드(PB)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혐의를 받은 김원회(62) 홈플러스 그로서리매입본부장에게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했다. 노병용(66) 전 롯데마트 대표에겐 금고 4년형이 내려졌다. 금고형은 징역형과 마찬가지로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노역은 하지 않는다. 옥시·세퓨·홈플러스 세 회사에는 양벌 규정에 따라 벌금 1억5000만원이 각각 선고됐다.

‘배출가스 조작’ 폴크스바겐 임원 실형

국내로 수입되는 폴크스바겐 차량의 인증시험 성적서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아온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윤모(52) 인증담당 이사에게 징역 1년6월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이재석)는 판결문에서 윤씨에 대해 “배출가스나 소음 시험 결과를 조작한 죄가 인정된다”며 유죄 판결했다.

윤씨는 2010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폴크스바겐 차량의 배출가스·소음 시험성적서와 연비 시험성적서를 조작해 인증서를 발급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윤씨의 범행으로 역사가 깊은 브랜드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렸다”며 “변조된 시험성적서로 인증받은 차종들에 대해 대규모 인증 취소 및 판매정지 처분이 내려지는 등 중대한 사회적·경제적 피해가 야기됐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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