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회장 자살 동기 미스터리] '150억+α'중 α가 더 무서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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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 이틀째를 맞았으나 자살 동기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鄭회장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기 직전까지 처했던 상황을 재구성, 자살 동기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력하게 거론되는 자살 동기는 송두환 특검팀에서 ‘현대 비자금 1백50억원+α’수사를 넘겨받은 대검 중수부가 鄭회장의 엄청난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지금까지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달됐다는 비자금 1백50억과는 규모와 성격 등에서 차원이 다른 또 다른 비자금이 발견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 주변에선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현대 비자금이 2000년 4·13 총선 자금으로 여권에 흘러들어갔다는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다.

결국 대검 중수부가 현대 핵심 관계자들에게서 이 같은 정치자금이 존재한다는 진술을 받아 이를 토대로 鄭회장을 강도 높게 추궁했으리라는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비리가 노출되자 “모두 안고 가겠다”며 스스로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이다.

대검 중수부가 지난달 26일과 31일, 지난 2일 등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鄭회장을 소환한 점은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해 준다. 당시 鄭회장에 대한 조사는 매번 오전 10시부터 밤 늦게까지 12시간 이상 강도 높게 진행됐다.

현대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鄭회장이 검찰에서 늦게까지 조사받고 다음날 세시간 동안 재판을 받고 녹초가 됐엇다”고 말했다. 鄭회장 가족들도 “鄭회장이 대검 수사가 본격화 하면서 심신이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고 자주 우울해 했다”고 했다.

비자금 1백50억원의 실체를 알고 있는 전 무기중개상 김영완(미국 체류)씨의 조기 귀국 움직임도 鄭회장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鄭회장이 金씨가 조만간 귀국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매우 초조해 했다”고 한 현대그룹 관계자가 전했다.

金씨는 朴전실장의 측근으로, 현대 측이 朴전실장에게 줬다는 양도성예금증서(CD) 1백50억원을 돈 세탁한 인물이다. 金씨가 대검에 출두해 “현대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朴전실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할 경우 鄭회장이 곤혹스러운 입장이 될 수 있다.

지난달 26일 국내에 입국한 鄭회장의 재미동포 친구인 박기수씨가 미국에서 만난 金씨의 입장을 전하자 鄭회장이 크게 낙담했다는 얘기도 돈다.

이와 함께 鄭회장은 1백50억원의 중간 전달자인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기존 발언을 번복하는 등 돌출행동을 할지 모른다며 부담스러워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鄭회장의 타고난 성격도 자살 동기의 하나로 지적된다. 사교 범위가 넓지 않아 측근만 상대해 온 그가 특검과 재판, 대검 수사를 거치며 중요한 고비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하는 DJ 정부의 핵심 실세 및 현대 가신들에게서 배신감을 느꼈고 소심한 그가 번민에 빠졌을 수 있다.

鄭회장의 한 친구는 “수사와 관련해서도 믿었던 가신들이 어떤 진술을 할지 몰라 전전긍긍할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신감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고 그가 처했던 상황을 전했다.
조강수 기자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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