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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미자·버섯 따고 칡 캐고…산에서 사시사철 돈 벌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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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웅씨가 자신의 산에서 “귀산을 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30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2013년 귀산했다. [무주=프리랜서 오종찬]

김웅씨가 자신의 산에서 “귀산을 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30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2013년 귀산했다. [무주=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23일 전라북도 무주군에는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다. 이날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 상평마을을 찾았을 때엔 하얀 눈이 마을 주변 산을 덮고 있었다. 김웅(62)씨의 집은 바로 그 산에 자리했다. 무주터미널에서 20여 분을 차로 달려 마을에 도착했지만 산길을 따라 몇 분을 더 올라가야 비로소 집이 보였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이었다. 집 주변은 밤나무 등 각종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김씨는 집에 도착하자 영하의 날씨임에도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표고버섯을 살폈다. 포클레인으로 집 주변 나무도 능숙하게 정리했다. 이날 오전 11시에 열리는 마을 대동제에 참석하라는 주민들의 전화였다.

4년차 귀산인(歸山人) 김웅씨
IT맨으로 30년, KT 상무 지내
산세·토질에 반해 무주에 정착
임산물은 물론 양봉·양돈·양계도
청정 작물 유통 농업법인 세워
농어촌보다 초기 적응 힘들 수도
주택·소득수단 꼼꼼히 준비해야

평생 이곳에서 산 주민 같아 보이지만 김씨는 4년차 귀산인(歸山人)이다. 6년 전만 해도 그는 KT 상무였다. 1978년 체신부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한 후 82년부터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30년을 근무했다. 2010년 회사를 떠난 뒤에도 정보통신(IT) 관련 중소기업의 부사장으로 활동했다. 그랬던 김씨는 2013년 무주로 내려왔다. 급작스러워 보였지만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직장인으로서 열정적으로 일하며 만족감도 느꼈지만 진짜 원하는 행복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돼지를 들어 보이는 김웅씨. 그는 산에서 양돈과 양계, 양봉을 하고 있다. [무주=프리랜서 오종찬]

돼지를 들어 보이는 김웅씨. 그는 산에서 양돈과 양계, 양봉을 하고 있다. [무주=프리랜서 오종찬]

그가 찾은 행복은 자연이었다. 2005년 경기도 이천에 1000㎡(약 300평) 정도의 땅을 마련해 과일 나무와 채소를 기르면서 농사의 재미에 푹 빠졌다. 귀촌 결심을 굳힌 김씨는 2010년부터 한국벤처농업대학 예비농업스쿨 과정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귀촌 준비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산에 정착하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김씨는 “귀촌 결심 후 고향인 전남 고흥부터 충남 보령까지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 10여 곳을 둘러봤다”고 말했다. 우연히 소개받은 무주군 부남면은 김씨가 생각하는 귀촌 최적지였다. 수려한 산세와 좋은 토양이 마음에 들었다. 퇴비와 볏짚, 미생물을 이용해 작물을 기르겠다는 김씨의 ‘자연농법’ 목표를 실천하기에 적합했다. 고속도로가 인접해 대전까지 1시간 거리인 지리적 입지도 좋았다. 이곳에선 회사 생활을 하며 쌓은 수도권 지역 인맥과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김씨는 “무주는 산지 비율이 83%로 전국의 시·군 중에서 가장 높다”며 “산림 자원을 활용하면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귀산 후 1년간은 주거시설과 시설 인프라를 구축했다. 3억여원의 자금은 KT에서 받은 퇴직금과 경기도 용인에 있던 아파트를 처분해 마련했다. 어떤 작물을 기를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무주 지역 산지의 산림 정보와 기존 토지 이용 현황 등을 분석해 어떤 품목을 재배하는 것이 좋은지를 분석했다. 임업진흥원이 제공하는 임업인콜센터와 ‘산림정보 다드림’ 시스템의 도움을 받았다.

김씨가 선택한 것은 밤나무와 오미자, 더덕, 산양삼, 고사리 등이었다. 꿀을 채취할 수 있는 나무인 ‘밀원수’를 심은 뒤 벌을 기르는 양봉도 시작했다. 돼지와 닭 등을 산에 풀어 키우는 산지 양돈·양계도 하고 있다. 김씨는 “봄부터 가을까지만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엔 칡을 캐며 지낸다”며 “사계절 내내 산에서 돈을 버는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 김씨가 올린 수입은 3000만원 정도다. 그는 “이익을 낸 건 얼마 되지 않았다”며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피그말리온 허브’란 농업법인을 세웠다. 그는 법인을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 무주에서 자란 청정 산작물을 보다 많은 지역에 소개할 생각이다.

귀농(歸農)·귀어(歸漁)에 이어 김씨처럼 귀산을 꿈꾸는 사람은 늘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0년 9557명이던 귀산 인구는 2011년 1만2376명, 2012년 1만2937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귀산인 관련 통계는 2013년부터 기준이 바뀌어 귀촌인에 포함해 집계되고 있다. 임원필 산림청 신림휴양치유과 사무관은 “2014년 43만9535명이던 귀촌인 수는 2015년 46만6778명으로 2만7243명(6.2%) 증가했다”며 “귀촌인 수가 늘어나는 점에 비춰보면 귀산 인구도 증가하고 있는 걸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산은 특히 김씨와 같은 ‘반퇴세대’에게 매력적이다. 산림 자원이 풍부해 자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건강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속에서 지내는 중년 남성을 소개하는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의 인기도 한몫을 했다. 경제적 이점도 있다. 산은 땅값이 농지의 10~20%에 불과하다. 수시로 농약이나 비료를 뿌리고 논밭을 살펴야 하는 농사일보다 품도 덜 든다. 과거 산촌 지역의 주수입원은 목재로 쓰는 장육림(長育林)뿐이었다. 요즘엔 식용과 약용 작물 재배로 얻는 소득이 상당하다. 김씨처럼 오미자나 버섯, 더덕, 고사리 등을 재배하거나, 5~6년 길러 과실을 얻는 산수유나 살구 등 고소득 품종을 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에서 어떻게 지낼지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귀농과 귀어보다 더 큰 실패를 맛볼 수 있다. 김씨는 “산속에 텐트나 움막을 짓고 사냥이나 수렵을 할 수는 없다”며 “산은 농촌이나 어촌보다 환경이 열악할 수 있어 소득 수단과 주거 환경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주민과의 융화도 필수다. 김씨가 귀산을 준비하며 가장 고마웠던 사람은 아내 박홍순(58)씨다. 귀산에 선뜻 동의했을 뿐 아니라 2012년 김씨보다 1년 먼저 무주에 내려갔기 때문이다. 박씨는 무주종합복지관에서 취약노인관리사로 활동했다. 독거노인들의 말벗을 해 주며 주민 마음을 얻었다. 당시 회사를 다니며 주말에만 무주에 내려왔던 박씨는 아내 덕분에 2013년 7월 완전히 귀산할 수 있었다. 김씨도 귀산 후 산불감시요원을 시작으로 무주군 귀농귀촌협의회 부회장을 지내며 활발히 활동했다. 김씨는 “주민 수가 적은 산촌에선 이웃의 도움이 농촌보다 더 필요하다”며 “낮은 자세로 주민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무주=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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