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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언론의 권력 감시, 권력의 언론 감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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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일본에는 신문기자 중에 총리번(總理番) 기자가 있다. 일본 발음으로는 ‘소리방’ 기자다. 그들은 총리 관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하루 종일 총리의 일정을 확인한다. 총리가 몇 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지, 몇 시에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어디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지 등을 분 단위로 꼼꼼히 체크한다. 정치부 기자가 되면 으레 1~2년은 그 일을 해야 한다. 소리방 기자는 출입자를 놓칠까봐 화장실도 뛰어갔다 돌아온다. 밥도 빨리 먹어야 해서 그릇을 입에 대고 음식물을 쓸어 넣는다. 그 덕에 독자들은 아침 신문에서 그 전날의 총리 동선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이 권력 감시 잘 못하고
권력이 언론 적극 감시한 한국
MB 때부터 언론자유 뒷걸음질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돼
율곡, “말길 열려야 다스려지고
말길 막히면 나라 어지러워져”

우리나라는 전혀 다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청와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을 벗어날 수 없다. 대통령을 볼 수도,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을 확인할 수도 없다. 이번 최순실 사태를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기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수석들마저 그런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 같은 비선 실세가 이른바 보안손님으로 청와대에 드나들며 국정을 어지럽혔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구조적으로 권력 감시에 엄격한 제한을 받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 청와대는 되레 언론 감시에 집착했다. 작고한 어느 수석이 남긴 비망록에 따르면 청와대는 입맛에 맞지 않은 보도에 대해 사법적 제재를 가하고자 하는가 하면, 방송통신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또는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통해 행정적 제재를 가하게 하고, 시민단체를 앞세워 사회적 압박을 행사하게 했다. 이 비망록은 그 수석이 재임 기간의 일을 적은 것이지만 실장이나 수석이 바뀐 뒤에도 그 기조는 유지되거나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박 대통령 시대에 문화공보부 계약직 직원들이 하던 작업을 딸 박 대통령 시대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수석이 진두지휘한 것이다. 청와대 시계가 거꾸로 돈 셈이다.

 정부의 이런 언론 감시는 우리나라 언론자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국제적인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는 올해 우리 언론자유지수가 세계 180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70위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자유 순위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 31위까지 올랐으나,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69위로 곤두박질하더니 올해 한 순위 더 내려앉은 것이다.

이 기자회는 박근혜 정부하에서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매우 긴장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정부가 비판을 인내하지 않아 언론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기자회는 우리나라에서 대북 관계에 대한 공공토론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차단되고 있으며 북한에 호의적인 기사나 방송을 내보내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명예훼손죄 역시 최장 7년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어 언론이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자회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올해의 언론자유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언론자유도는 33점으로 조사 대상 199개 국가 가운데 66위를 기록했다. 2013년에 31점이던 언론자유도가 2014년 32점, 2015년 33점으로 오르더니 올해에도 33점에 머물렀다. 프리덤하우스의 언론자유도는 점수가 낮을수록 자유롭고 높을수록 그렇지 않다는 걸 나타낸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언론자유도 점수가 올라갔다가 멈춘 것은 언론자유가 위축됐다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프리덤하우스는 각국의 언론자유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했다.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가 완성됐다고 느끼고 있지만 국제기구의 눈에 비친 우리 언론자유는 경제수준과는 걸맞지 않게 중진국 수준을 맴돌고 있다.

언론이 권력 감시에 충실한 나라와 권력이 언론 감시에 적극적인 나라에서 그 결과는 어떤 차이를 빚어낼까? 일본 아베 총리와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의 현재 위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총리의 행적이 낱낱이 감시를 받는 일본에서 아베 총리는 국정지지도 50%를 어렵지 않게 유지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언론의 감시권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언론을 적극적으로 감시한 우리나라에서 박 대통령은 국정지지도 4%라는 역사적인 저점을 기록하더니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많은 사람은 이번 일을 전기 삼아 우리나라가 새로운 사회로 이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의 권력 감시를 보장하고 권력의 언론 감시를 제한하는 일이다. 일찍이 율곡(栗谷)은 “말길(言路)이 열리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말길이 막히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고 했다. 바로 지금 우리는 최순실 사태를 통해 그야말로 피눈물 나게 율곡의 명제를 재확인하고 있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