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성패가 정국갈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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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10규탄 대회 이후 격렬한 전국적 시위와 접점 없는 여야대결호 위기감을 고조시켜오던 정국이 민정당의 영수회담 수용을 계기로 한가닥 탈출구를 찾고 있다.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전개되어 어떤 정치적 결실을 가져올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간 야당의 일방적「요구」와 여당의 일관된「거부」대상이었던 영수회담이 실현된다면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적 의미는 적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과격 시위와 충돌로 비상 조치설이 분분하던 저의의 형편을 감안할 때 영수회담은 많은 국민들에게 불안해소와 새로운 기대효과를 주고 있는게 사실이다. 정치권이 이 같은 국민적 여망을 영수회담으로 용해 할 수 있으면 시국은 태풍권을 벗어날 뿐 아니라 우리의 정치문화는 한 단계 성숙의 가능성을 보일 수 있을 것이며 반대로 이것마저 무위로 끝난다면 그 다음 상황은 전보다 더한 혼미와 불안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민정당이 그동안 추진해 오던 노태우·김영삼 회담을 건너뛰어 단숨에 영수회담을 받아들인 것은 두 말할 것 없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뼈아픈 자성으로 확인되었다시피 4·13조치가 국민의 이사를 묻지않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는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데 대해 이제 민정당내에는 아무런 이론이 없다.
때문에 민정당은 이 같은 잘못을 시인한 바탕 위에 야당의 공세를 받으면서 국민의 반발을 진정시켜야 하는 2중의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러자니 자연히 대폭「양보」로 탈출구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야당의 주장 중 직선제와 김대중씨의 사면·복권을 빼고는 모두 들어 준다는 태도다. 민정당으로서는 국면전환을 위해 과감히 카드를 던진 것이며 김영삼총재와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여당의 세불이를 확인한 측면이 있다.
어쨌든 민정당은 영수회담을 수락함으로써 당면현안을 우선 정치적으로 풀어가겠다는 방침을 세운 셈이며 직선제 정치권을 짓누르던 위기설은 상당기간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민정당의 시국 수습책은 △개헌논의를 즉각 재개해 금년 9월까지 합의 개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때까지 개헌 타결이 안되면 만부득이 현행 헌법으로 정권교체를 하되 차기 정부의 임기에 시한을 정해 개헌협상을 계속하며 △그것마저 안되면 올림픽이 끝난 후 88년 내에 13대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내각제와 직선제를 국민들이 택일케 하자는 것이다. 금년 9월까지 합의가 안되면 88년까지의 정치일정을 국민 투표에 부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개헌 논의를 재개하면서 합의 안될 경우를 미리 대비하는 것은 자칫 진장를 의심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덮어두기로 했다. 또 현행헌법으로 대통령선거를 하더라도 대통령선거법을 대폭 고쳐 그 공정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13대 총선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하는 것이 순리라는데 내부적인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민정당의 그 같은 구상이 얼마나 야당의 호응과 국민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민정당내에는 야당의 이 같은 노력에 대해 이번에도「시간끌기」작전, 또는 안될 경우에 대비한「명분축적」작전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다.
따라서 민정당 안에도 이번만은 합의개헌을 위해 일체의 격식과 체면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으며 내각제 합의을 위해 필요하다면 노태우대표의 대통령 후보 사퇴와 김대중씨의 사면 복권도 활용해야 한다는 적극론이 앞서고 있다. 말하자면 다시 개헌협상을 한다고 해 놓고 국민들이 수긍할만한 노력 없이 몇 달 후에도 문제를 똑같은 수준에 묶어 놓은다면 민정당의 정치력이나 신뢰는 여지없이 실추되고 말 것이란 위기감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성격이나 여야의 구도로봐서 그 같은 합의개헌관철목표는 여전히 어둡다는데 민정당의 고민이 있다. 우선 협상당사자 인민정당은 단순히 개헌논의를 재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지난 1년간 내각제다, 직선제다 하며 무익한 정쟁을 거듭했는데 이를 다시 되풀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영삼총재는 영수회담에서 명시적으로 4·13철회를 선언 할 것과 김대중씨의 사면·복권, 직선제수락 또는 선택 전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설득」하겠다고 할 뿐「절충」의 이사는 아직 비치지 않고 있다. 이번 반해 여당은 영수회담에서 대통령이 개헌논의재개 등의 원칙적인 이사를 밝히고 구체적 협상은 노태우·김영삼 회담에서 절충토록 한다는 입장이어서 출발부터가 엇갈리고 있다. 민정당에는 영수회담을 여권의 국면수습책으로 보고 기대할게 없다는 시각이 다수있고 이런 현상은 재야 강경 세력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영수회담을 지켜보기는 하겠지만 26일의 민주화 평화 대행진은 계획대로 추진해 야당의 힘을 계속 확인하겠다는 자세다. 다만 김영삼씨측은 영수회담에서 4·13조치철회가 공면 진짜 합의를 시도하겠다는 여지를 두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여야가 영수회담을 통해 개헌의 큰 매듭을 풀고 대화와 타협으로 정국불안을 극복하기에는 허다한 난관이 첩첩이 가로막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고 전망이 밝다고 만은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협상이냐, 파국이냐는 마지막 선택의 지점에 몰릴 때까지 여야협상은 곡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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