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하는 중국 압축하는 일본 은유하는 한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0호 32면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한·중·일의 정치·경제·외교 관계는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불편한 과거, 실리를 좇는 현재가 뒤섞인 때문이다. 닮은 듯 다른, 세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알게 되면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진 않을까.
나란히 인접한 이 세 나라는 옛부터 비슷한 점이 많았다. 유교와 불교가 융성하고, 쌀을 주식으로 하며, 기후도 비슷하다. 문화 역시 닮은 점이 많다. 서양의 지붕과는 다른 짜임새 때문에 한·중·일 옛 건축에는 처마가 존재한다. 지극한 불심이 창조한 부처는 회화·조각 등 다양한 문화장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면면이 조금씩 다르다. 이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지상현 한성대 예술대학 교수는 “심리적 혹은 심미적 차이”를 꼽는다. 그 증거로 문화의 뿌리가 담긴 삼국의 옛 미술을 내세운다. “문화는 민족의 기질과 마음을 드러내는 지도”이기 때문에 “민족 간 미술 양식의 차이는 미술을 넘어 그 민족의 기질 혹은 기저 문화에 관한 중요한 특징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지 교수는 옛 미술 속에서 ‘곡선성, 전형성과 은유, 강박, 공포와 해학, 대비, 복잡도, 전망과 도피’의 일곱 가지 코드를 찾아내고 각 유형별로 사례들을 대입해 설명했다.
예를 들어 문인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대나무만 해도 삼국은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다. 한국의 회화에서 중시한 기법은 ‘골법용필(骨法用筆)’, 즉 붓 자체가 갖고 있는 특성과 붓을 사용하는 원칙에 주력했다. 한국의 묵죽도를 보면 대나무는 그림을 시작하는 모티프였을 뿐, 실제 그림의 핵심은 능숙하고 담백한 붓놀림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중국의 묵죽도는 응물상형(應物象形), 물체 자체의 모습이나 특성대로 형상을 표현하는 게 원칙이다. 때문에 화풍이 유사하고 개성이 부족하다. 이에 비해 일본의 묵죽도는 대나무 자체보다 화폭 안에서 보이는 기하학적 구도를 중시했다.
옛 건축의 지붕 처마 모양도 삼국은 조금씩 다르다. 한국의 처마는 조신하게 똑바로 나아가다 어느새 살짝 휘어 올라가는 버선코처럼 완만한 곡률(휘어있는 정도)을 보인다. 흥과 한이 공존하는 기질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는 처마 길이를 100이라 할 때 거의 100의 곡률을 갖는 경우가 흔하다. 지 교수는 중국 처마의 화려하고 둥근 곡선을 “과장된 것을 좋아하고 태극처럼 음과 양이 서로 순환한다는 생각이 몸에 밴 중국인의 기질”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일본은? 처마 끝만 미세하게 휜 정도여서 대부분이 직선의 형태를 보인다. “간결함과 규칙성을 중시하는 일본인답게 기하학적 비례에서 나오는 전체적 균제미를 더 중시한 것 같다”는 게 지 교수의 해석이다.
물론 문화는 수학공식이 아니다. 지 교수가 분류한 일곱 가지 코드도, 이에 따른 분석도 절대적인 답은 아닐 터다. 수많은 예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쉽게 책장을 넘기다 367쪽에 걸친 다소 장황한 이론 속에서 길을 잃고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런 탓이다. 이럴 때면 매 페이지마다 삽입된 삼국의 건축·회화·조각 사진들을 천천히 비교 감상해 볼 것을 권한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흥미진진함과 설득력이 있다.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