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채 바다로 뛰어들어|유람선 화재 희생자 거의가 부녀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해금강=임시취재반】흥겨운 유람선의 귀가길에 날아든 날벼락 이었다.
해금강의 수려한 경관에 취해 있던 유람선은 『펑』하는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불길에 싸여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부분 부녀자인 승객들은 불길을 피해 좁은 배안에서 이리저리 쫓기다 바다로 뛰어 들었으며 일부 승객은 옷깃에 불이 붙은 채 바닷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죽음의 항로」로 배를 몰아댄 유람선은 폐차 처분된 자동차의 엔진을 달고 운항해온 사실이 드러났고 구명동의등 배안의 안전장구는 도난방지를 위해 밧줄로 꽁꽁묶여 있어 속수무책.
문제점 투성이인 유람선은 푼돈을 모아 관광길에 오른 부녀자들의 소박한 꿈과 함께 비명만을 남긴 채 해금강 앞 바다에 침몰해 버렸다.
◇사고순간=기관사 고대성씨는 사고해상에 이르러 기관실에서 스파크가 튀면서 연기가 뿜어나와 선장실에 있던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으나 작동이 되지 않아 초기진화를 못했다고 말했다.
불길이 번지자 선장 박만근씨가 뱃머리를 육지로 돌리려 했으나 기관이 꺼지면서 배가 말을 듣지 않고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것.
선장박씨는 선박예인용 밧줄을 몸에 감고 바다로 뛰어들어 육지에서 50여m쯤 떨어진 암초에 올라가 밧줄로 배를 끌어 당기려고 안간 힘을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물속에 뛰어든 승객10여명이 밧졸에 주렁주렁 매달리자 힘이 빠진 박선장이 밧줄을 놓는 바람에 매달렸던 승객들도 물속으로 가라 앉았다.
또 선상에서는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승객들이 우왕좌왕하자 50대 한 남자승객이 『질서를 지키라』고 외쳤으나 승객들은 불길을 피해 바다속으로 무작정 뛰어 들었다.
불이 났을 때 배앞쪽에는 대구관광객이, 뒤쪽에는 남원관광객들이 타고 있었으며 일부는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갑판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구조=사고해상옆 초소에 근무하다 극동호의 화재를 목격한 김룡길하사가 상부에 보고,해경경비정10척, 해군경비정4척등 14척이 사고해역에 출동, 구조작업을 벌였다.
이에 앞서 인근을 지나던 유람선4척이 연기를 보고 현장에 접근, 구조를 시작했다.
그러나 구조선들이 도착했을 때는 사고발생 2시간이 지난 뒤여서 불길에 쫓긴 승객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대부분 익사한 상태였다.
승객중 이정교씨등 8명은 구명동의 1개에 4명씩 매달려 1시간이상을 표류하다 구조되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