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鬱 -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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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호 29면

해가 저문다. 올해는 어떤 한 해로 기억될 것인가. 한자를 쓰는 나라의 지식인들은 한자 키워드로 한 해를 돌아보곤 한다.


중국 주간지인 ‘신주간’과 저장(浙江)위성TV가 뽑은 한자는 ‘刷(쇄)’였다. 중국어로는 ‘슈아(shua)’다. 뭔가 긁거나 닦을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할 때 ‘刷’를 쓴다. 우리로 치자면 ‘휙~’정도가 되는 의성어다. 신주간은 “이미 우리는 ‘쇄시대(刷時代)’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위챗과 같은 SNS를 휙 보거나, 웹드라마를 휙 보고 넘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刷’는 모바일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중국의 중국어언자원검측연구센터와 상무인서관, 인민망 등이 공동으로 고른 한자는 ‘規(규, 규칙)’와 ‘小目標(소목표, 작은 목표)’다. 여기에 ‘變(변)’과 ‘一帶一路(일대일로,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추가했다. 연구센터 측은 “새로운 규칙(規) 아래 작은 목표(小目標)를 실현하고, 변동하는(變) 국제 정세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성사시킨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가의 정책 홍보 문구 같다. 대만 연합보(聯合報)가 꼽은 한자는 ‘苦(고)’였다. 태풍 등 잇단 자연재해, 경제 악화, 청년실업 등으로 대만인들의 삶이 더욱 고달파졌다는 뜻이다.


일본의 한자능력검정협회는 글자 ‘金(금)’을 선택했다. 일본이 리우데자네이루 여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많이 땄다는 점,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도쿄도(東京都)지사의 정치자금(資金) 유용 사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금발(金髮) 등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중국 중국어언자원검측연구센터가 선정한 국내외 10대 신조어에 ‘閨密門(구이미먼)’이 포함돼 관심을 끈다. ‘閨密’는 ‘규중(閨中)의 밀우(密友)’, 즉 아주 친한 여자들 사이의 친구라는 뜻이다. ‘密(비밀 밀)’자를 ‘蜜(꿀 밀)’자로 바꾼 게 이색적이다. 중국 언론들은 한국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전하며 ‘閨蜜門’이라고 표현한다. ‘가까운 여자친구끼리 만든 정치 게이트(門)’라는 뜻이다.


어쩌다 우리나라 정치는 중국인들의 신조어 소재가 됐다. 우리는 ‘답답하고 우울하다’라는 뜻의 ‘鬱(울)’자를 꼽아야할 듯싶다.


한우덕차이나랩 대표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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