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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고통이 진주일 수 있다’는 이해인 수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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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해 12월,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랐다.

‘이해인 수녀 위독’이라는 알림이었다.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익히 알려진 터라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진위를 확인하려 여기저기 알아봤다. 다행히 헛소문이었다.

헛소문이 급속도로 퍼진 건 그만큼 수녀의 건강이 관심사라는 의미였다.

2012년 6월, 이해인 수녀를 만난 적 있었다.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혜민 스님과 대담이 성사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기자로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이해인 수녀를 손꼽던 터였다.

뵙고자 청을 넣어도 도통 만날 수 없었다.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답만 들을 수 있었다.

오매불망하던 일이니 열일 제쳐 두고 부산으로 향했다.

이해인 수녀는 달음질하듯 달려 나와 취재진 일행을 반겨주었다.

여지없이 드러난 하얀 이빨, 눈동자를 가릴 만큼 깊이 파인 주름의 웃음,

병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담을 하며 이 수녀가 농담처럼 말했다.

“일주일 전쯤 갑자기 어지러워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오늘 스님도 못 보고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구나 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고혈압 약을 꼭 챙겨 먹으라고 했는데 방심했다가 그만….”

혜민 스님이 놀라며 암 투병의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물었다.

“처음 병을 알고 나서 하루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어요.

솔직히 두렵기도 했어요. 고통을 참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죽음이 친근해졌어요. 지금은 굉장히 평온해요.”

순간 이 수녀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사진으론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빛에 비친 눈 아래, 뭔가 반짝이며 영롱했다.

이야기를 듣던 혜민 스님 또한 눈을 훔쳤다. 그 영롱한 물기를 본 게다.

“이왕 온 암, 미워하기보다 같이 잘살아 보자며 다독였어요.

그런 마음으로 하루 또 하루 살다 보니 4년을 견딘 거예요.”

넌지시 웃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인터뷰 내내 손에 들고 있던 꽃을 입술에 물었다.

지나온 하루하루를 깨무는 듯했다.

“그러다 그냥 아프기만 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내 아픔이 고통에 빠진 이들에게 위로와 정화가 되길 기도했어요.

내 아픔을 통해 아픈 사람과 벗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참 고마운 일이잖아요.

고통이 진주일 수 있다는 것을 아파 보니 알겠네요.”

‘고통이 진주일 수 있다’는 말에 조금 전 보았던 눈가의 영롱한 물기가 겹쳐졌다.

대담을 마친 후, 혼자 남았다.

초상화를 한 장 찍고 싶다고 부탁했다. 이 수녀가 조건을 달았다.

예쁘게 찍지 말고 수더분한 할머니로 찍어 달라는 조건이었다.

할머니로 찍어 달라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일생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달고 산 이해인 수녀가 아닌가.

아픔을 겪고, 이겨내며 지금에 이른 당신의 모습이 더도 덜도 없는 ‘이해인’이란 의미였다.

다시 12월이다.

지난해도 그랬듯 이해인 수녀의 ‘12월의 시’를 찾아 읽었다.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 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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