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폭설 같은 병력을 쏟아 붓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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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6강전 1국> ●·판윈러 5단 ○·신진서 6단

12보(123~135)=좌상귀 쪽 23을 본 박영훈 9단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눈치다. 우하 일대 흑 세력 삭감과, 사석(捨石)을 활용한 좌하 백의 세력 확장은 신진서가 최선을 다한 진행이었지, 판윈러의 반면 운영이 잘못된 것은 아닌데 좌상귀 23은 좀 의문이라는 얘기다. 23을 선제하고 25, 27로 좌상귀의 실리를 최대한 확보한 뒤 우상귀 29까지 선수로 처리해 백이 당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흑이 ‘조금 더!’ 할 수 있었다는 게 박영훈의 계산.

‘참고도’ 흑1, 백2로 우상귀를 먼저 선수 처리한 다음 좌상귀 3부터 9까지 결정되면 실전처럼 흑 한 점(23)을 보태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흑a로 백 한 점을 끊어 잡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까지 감안하면 작지 않은 차이다.

중앙 33으로 째고 들어오는 판윈러의 손길은 가볍다. 좌상귀의 실수를 모르는 걸까, 그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결과를 낙관한다는 뜻일까. 33은 우변에 포도송이처럼 뭉친 백 대마를 차단하겠다는 경고의 선수. 계속해서 A, B도 모두 선수로 작용하니 허망하다. 한겨울 폭설 같은 병력을 쏟아 붓고도 중앙 백의 집은 공배나 다름없다. 어쩔 수 없이 34로 지킬 때 상변 35로 손을 돌리는데 찔리고 보니 거기도 아픈 ‘혈(穴)’이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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