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고 아옹하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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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일 아침 일본방송들은 서방7개선진국 정상들이 채택한 경제선언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등 신흥공업국들에 무역장벽을 제거하고 통화절상을 요구하는 책임분담 문제가 명기됐다고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한국의 원화 시세를 더욱 끌어올려「세계경제에 공헌하는」국가로 붙잡아 매두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주요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나카소네」수상은 베네치아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전부터 신흥공업국(NICS)의 통화절상이 미국과의 무역마찰 개선에 직접적인 관건이 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토록 관계부서에 지시할 정도였다.
NICS의 통화절상과 세계경제에의 책임분담 문제에 이들 국가와 무역거래 관계가 훨씬 깊은 미국보다 일본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채근하며 경제선언 시안에 관계항목을 집어넣는데 큰 몫을 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막상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경제선언이 채택되자 일본언론들은 NICS의 책임분담 문제는 미국이 주장한 것이며「아시아를 대표하는」일본은 매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고 보도, 이 선언에 대한 NICS의 비난을 미국쪽으로 유도하는 눈감고 아옹하는 자세로 표변했다.
일본은 NICS의 대부분이 몰려 있는 아시아지역의 권익을 대표한다고 늘 말해왔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에 관련된 주요행사에서는 이것이 한낱 말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도 보여주었다. 이점에서는 정부나 언론이나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마찰 개선책으로 주변국가에 적지 않은 책임을 몰아치려 하고 있다.
일본이 내세우는「live and let live」(나도 살고 너도 살리고)론이라는 미사여구가 너무 매끄럽듯 일본의 약삭빠른 상혼도 매끄럽기만 한 것 같다. <최철주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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