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태영호 “현영철, 집 도청되는 줄 모르고 얘기하다 처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다 지난 8월 탈북한 태영호(사진) 전 공사가 19일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일생 바칠 각오”라며 “앞으로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대외 공개활동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국회 정보위원장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전했다.

8월 귀순 전 북한 공사 비공개 간담회
“북한 고위층 자택 도청 일상화 돼
두 아들에게 노예사슬 끊겠다 약속
신변 위협 무릅쓰고 대외활동할 것
자금 횡령 도주 북 발표 사실무근”

태 전 공사는 이날 국회 정보위원장 및 여야 간사와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했다. 간담회 뒤 이 의원은 “태 전 공사는 조사를 마치고 오는 23일 사회에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가 어디에서 근무하게 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태 전 공사는 정보위원들과의 만남에서 “딸이 오지 못했다는 보도가 있는데 딸은 없고, 아들 두 명이 전부다. 두 아들은 한국에서 대학을 보낼 생각”이라며 “자금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이 두려워 도주했다고 북한이 발표했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태 전 공사가 북의 모략에 대비해 귀순 전 대사관 내 자금사용 현황을 정산하고 영수증을 사진 촬영까지 했다”고 전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태 전 공사는 “북한에서는 직위가 올라갈수록, 고위층일수록 감시가 심해져 자택 내에 도청이 일상화돼 있다”며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된 것도 집에서 (도청되는 줄 모르고) 얘기를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태 전 공사는 현 인민무력부장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나이가 어려 통치가 수십 년 지속될 경우 자신(북한 간부)의 자식, 손자대까지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간부도 많다”는 언급도 했다고 이 의원은 전했다.

태 전 공사의 탈북 배경과 관련해 이 의원은 “(태 전 공사가) 오랜 해외생활을 통해 한국 영화, 드라마 등을 보면서 한국의 민주화와 발전상을 체감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심이 싹트게 돼 오래전에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며 “김정은의 폭압·공포통치 아래 노예생활을 하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인식하면서 체제에 대한 환멸감이 커져 일순간 귀순 결심을 굳혔다”고 설명했다. 또 “귀순 당시 자녀들에게는 ‘이 순간부터 너희에게 노예의 사슬을 끊어주겠다’고 말했는데, 와 보니 왜 진작 용기를 내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민족의 소망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며 “갑자기 김정은이 죽어 내가 이바지한 것도 없이 통일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태 전 공사는 통일과 관련해선 “북한에는 2인자가 없기 때문에 김정은 한 사람만 어떻게 되면 완전히 통일된다. 오히려 엘리트나 측근들이 (북한 내에서) 정변이 일어날 경우 중국으로 도망갈까 우려된다”며 “북한 엘리트들이 한국 사회에 와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게 (남한이) 법과 제도를 바꿔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