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미등 가격인하물가비상에 땜질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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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물가사냥」이 본격화되고 있다.
3일 정부가 발표한 정부미·밀가루·대두유·라면등 4개식품류의 가격인하조치는 이들 품목이 새로운 가격인하요인이 생겨서라기 보다는 물가를 잡기 위해 행정적으로 이뤄진 것이란 점에서 물가상승에 대한 정부의 우려 정도와 대응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수있다.
올들어 국제수지흑자가 쌓이고 이로 인한 통화증발이 계속된데다 유가및 국제금리의 상승등으로 그동안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가능케 했던 외부 요인들이 바뀌면서 물가가 불안한 조짐을 보였다. 올들어 5월말현재 물가는 도매가 2%, 소비자가 3·2% 오름으로써 올 연말 억제목표인 도매 1∼2%, 소비자 2∼3%선을 이미 무너뜨리고 있다.
5월의 물가종합대책에 이어 이번에 주요 식료품 가격을 10∼11%나 내린것은 이같은 물가상승을 어떻게든 잡아보려는 고육지책이랄수도 있다.
이번에 가격인하의 키포인트라할 수 있는 정부미 가격 인하의 경우 소비자가격이 내린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미 가격인하라는 조치가 다른 부작용을 몰고올 소지가 적지 않다는데있다.
먼저 양특적자의 문제다. 정부미 값이 10%떨어지면 연간정부미 판매량을 6백만섬으로 잡을때 약6백16억원의 추가적자가 발생한다. 값의 인하로 해서 정부 생각대로 10%쯤 수요가 는다고 가정할 때 재고 관리비용이 약1백48억원쯤 줄어들것으로 분석되고있는데 이를 감안해도 이번 조치로 연간 4백68억원의 적자가 추가로 늘어나게 된다. 양특적자는 결국 어떤 시기에, 어떤 형태로든 국민이 부담해야할 짐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번의 방출가 인하가 올 가을의 추곡수매가 책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는 것이다. 방출가 인하로해서 수매가와의 차가 더욱 벌어질 경우 재정·경제적 이유를 들먹여 수매가 인상이 극히 힘들어질 가능성이 큰데 아직도 농업소득, 그중에서도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우리 농가경제구조로 볼 때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공산이 크다. 현재의 물가상승 우려가 통화증발이나 수입물가 상승에 주로 기인하고 또 정부미 비중이 줄고있기는 하지만 정부미가격이 일반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앞으로 큰 쟁점으로 등장할 소지가 있다.
또 이번에 함께 내린 밀가루·라면등은 이것이 쌀의 대체재관계에 있다는 점을 고려, 함께 가격을 낮춘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정부미 가격인하로 인한 수요증대, 그에따른 재고관리비용 경감이란 결과가 과연 이뤄지겠느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라면의 경우 1백원짜리만을 10원 내리는데 밀가루값 인하에 따른 하락요인(약 2·2%)을 감안해도 이제까지 라면업계가 개당 1∼2원 마진보기도 어렵다고 호소해 왔던점을 감안하면 워낙 내림폭이 커 앞으로는 1백원을 넘는 고급라면에만 더욱 치중, 1백원(인하후 9O원)짜리 라면은 오히려 사먹기만 힘든 형국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물가당국의 고심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나 수단이 순리에 맞지않을 경우 항상 부작용이 뒤따랐다는 경험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경제순리에 의해 상품의 가격이 정해지지 않고 행정적 강제조치에 의존할 경우 경제현상의 왜곡은 물론 나중에 더 큰 국민적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할것이다.

<박태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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