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난전을 유도할 승부처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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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6강전 1국> ●·판윈러 5단 ○·신진서 6단

9보(90~101)=우하귀 90은 괴로운 응수타진. 수를 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국을 새롭게 조망하겠다는, 일종의 시간 연장 수단이며 분위기 전환의 한 수다. 92, 94는 공격을 겸한 상변 확장. 우변 96은 은근한 유혹이다. ‘참고도’ 흑1로 받아주면 우상귀 쪽 백2로 흑▲ 두 점을 잡는 수단이 성립한다. 흑3으로 내려서는 수가 우상귀 백의 사활에 선수가 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게 백△의 역할.

유혹은 실패다. 판윈러는 즉각 우상귀 97로 젖혀 신진서의 주문을 거부한다. 하긴, 이 정도의 유혹에 빠져서야 어디 세계 16강의 체면이 서겠는가. 신진서는 국내외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기대대로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하고 있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신예. 대범한 흑 세력 공략의 작전이 실패한 뒤로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다시 우하귀 100. 90을 두었을 때와 같은 상황이다. 다급하게 쫓기는 마음을 잔잔한 호수처럼 만드는, 한 호흡의 여유가 필요하다. 101을 바라보는 신진서의 눈빛이 흐리다. 승부의 저울추는 이미 흑 쪽으로 기울었다. 도대체 어디를 둬야 역전의 희망을 되살릴 수 있을까. 국면이 복잡하지 않아서 난전을 유도할 승부처도 보이지 않는다. 당장은 좌상귀 백A도 크고 우상귀 백B도 두고 싶은데….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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