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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탓 저녁 제때 못 먹고 새벽 3시까지 공부하는 중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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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초등학교 5학년인 정성수(가명·11)군의 하루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 평일 오후 3시쯤 학교를 마친 뒤 공부방에 다녀오면 7시. 학교와 공부방에서 내준 숙제를 하다 보면 9시30분이 된다. 겨우 30분 정도 쉰 뒤 오후 10시 잠자리에 든다. 성수군은 “저녁 늦게만 잠깐 쉴 수 있는 탓에 친구들과 놀거나 게임을 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 학년 위인 이예림(가명·12)양도 비슷하다. “엄마가 숙제를 빨리하라고 재촉해 휴대전화 볼 시간도 없을 때가 많아요. 아빠가 시험 100점을 맞으면 노트북을 사 준다고 하지만 공부할수록 스트레스만 더 받아요.”

굿네이버스, 학생 등 1만7830명 조사
초등 4·6년, 중2 대상 아동권리 계산
학년 오를수록 점수 큰폭 떨어져
아동권리지수 부산·대구 순 높아
전북·제주·충북 등은 하위권에

이처럼 우리 아이들은 공부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학년이 오르고 학업 부담이 커질수록 아이들이 누릴 권리는 폭이 더 좁아진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굿네이버스는 12일 학생(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 2학년)·학부모 1만7830명을 대상으로 한 아동권리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아동권리를 ▶생존권(영양 섭취 등 기본적 삶에 필요한 권리) ▶발달권(적절한 교육을 받아 성장할 수 있는 권리) ▶보호권(차별·폭력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참여권(자신과 관련된 결정을 스스로 하도록 참여할 권리) 등 4개 영역으로 나눠 ‘아동권리지수’를 계산했다. 지수가 100점을 초과하면 평균보다 더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의미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 4학년의 아동권리지수가 105.9점으로 가장 높았고 초등 6학년(101점), 중학 2학년(93.1점) 순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다. 입시 준비와 사교육시장에 내몰리면서 본인의 권리를 지킬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연구를 총괄한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가 아동의 권리를 짓누르고 있다. 외국과 비교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수가 떨어지는 폭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동들이 접하는 현실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초등 4학년이 15.4%인 반면 중학 2학년은 39.3%로 급증했다. 반면 규칙적인 식사를 하거나 달리기·축구 등의 운동을 종종 한다는 응답은 중학 2학년에서 가장 적었다. 내년 고교 입학을 앞둔 박세은(15)양은 “학원 수업시간을 맞추다 보면 제때 저녁밥을 못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부량이 워낙 많다 보니 밤을 새우고 오전 3시에 잔다는 친구도 많다”고 말했다.

아동권리지수는 시·도별로도 차이가 컸다. 16개 시·도(세종시 제외) 가운데 1위는 부산(107점)이었다. 이어 대구(105.7점)·울산(104.9점)·서울(103.8점) 등 광역시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반면 전북(93.7점)을 비롯해 제주(94점)·충북(95.2점) 등은 하위권에 처졌다. 시·도별 사회복지예산과 재정자립도, 부모의 인식 차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신원영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연구원은 “한국 정부의 아동가족복지 지출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30위에 불과하다”며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선 중앙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는 14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연구 결과 분석과 향후 정책 방향을 제안하는 ‘아동권리포럼’을 개최한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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