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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잘 모르겠다" 60번 "부끄럽고 죄송" 24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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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정 농단 청문회 모르쇠 ‘왕실장’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오후 10시50분 “최순실을 모른다는 것은 아는 사이 지인이 아니라는 그런 뜻”이라는 자신의 발언 뒤 정회된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2차 청문회장에 혼자 앉아 있다. [뉴시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오후 10시50분 “최순실을 모른다는 것은 아는 사이 지인이 아니라는 그런 뜻”이라는 자신의 발언 뒤 정회된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2차 청문회장에 혼자 앉아 있다. [뉴시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무능한 쪽을 택했다.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왕실장’으로 불렸던 그였지만 7일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선 각종 질문에 오후 11시까지 “알지 못했다” “잘 모르겠다”는 말을 60번 반복했다. 대신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사과를 24번 했다.

“최순실 존재 알았나” 의원들 추궁에
김 “이름 들어봤지만 접촉은 안 해”
김 “정윤회 문건에 정씨만 나온다”
야당 “문건 첫 문장에 최순실 등장”
김 “본 지가 오래돼 착각했다”

그가 “몰랐다”고 밝힌 내용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관저에서 의료 시술을 받았는지 여부를 포함해 다양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장제원 의원은 “김 전 실장이 최순실씨를 모른다고 하면 최씨 국정 농단의 퍼즐이 맞지 않고, 대통령이 그야말로 몸통이 된다”며 “건국 이래 가장 비참하게 퇴장할 대통령에게 김 전 실장이 돌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의원님이 자꾸 다그치시는데, 제가 알았다면 무언가 (최씨와) 연락을 하거나 한 통화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항변했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2월 청와대 정윤회씨(최씨의 전남편) 관련 문건 유출사건 당시 알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새누리당 이종구 의원)란 질문에 “(그 문건에는) 정윤회씨 이름만 나온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이 의원이 “2014년 12월 공개된 문건에 정윤회씨도 나오고 최순실씨도 나오지 않느냐”고 하자 “저는 그때까지도 사실 최순실씨의 존재를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 최순실씨 존재를 언제 알게 됐나”고 묻자 “JTBC에서 태블릿PC를 보도(지난 10월 24일)했을 때”라고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정윤회 파동 당시 청와대 문건을 제시하며 “첫 문장에 ‘최(태민) 목사 5녀 최순실, 최순실 부(夫)’라고 등장한다”고 따지자 “본 지가 오래돼 착각했다”고 말을 바꿨다. 박 의원은 2007년 7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후보 측 법률자문위원장이었던 김 전 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선 후보 검증청문회 현장 동영상에서 이명박 후보 측이 “최순실씨 관련 재산 취득 경위를 집중 조사했다”고 언급한 부분도 공개했다. 그러자 김 전 실장은 “최순실씨 이름을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씨와의 접촉은 없었다”고 했다. “하늘이 무섭지 않나”고 박 의원이 몰아붙이자 “접촉한 일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김 전 실장이 최순실씨를 모른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민주당 손혜원 의원)는 질문에 “(최씨가) 어르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봐서 직접 알지는 못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가 (김 전 실장이) 고집이 세다고 푸념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실장은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업무일지)에 적힌 내용에 대해서도 대부분 자신의 지시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비망록에 비서실장 지시는 ‘장(長)’이라고 표시했는데 2014년 10월 27일자를 보면 ‘세월호 인양, 시신 인양 X, 정부 책임 부담’이라고 기록돼 있다. 무슨 의미냐”(국민의당 김경진 의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시신 인양 안 된다. 정부 책임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를 김 전 수석이 받아 적은 것 아니냐”고 따져 묻자 “(수석비서관회의는) 여러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소통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실장이 얘기한 경우도 있고, 작성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도 가미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 의원은 “웬만해서 거친 얘기는 안 하는 사람입니다만 증인께서는 죽어서 천당 가기 쉽지 않으실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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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2014년 원내대표 시절에 있었던 일을 거론하며 김 전 실장을 몰아세웠다. 박 의원은 “당시 세월호 시신 인양과 관련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 전 실장과 전화하는 걸 옆에서 절반 정도 들었다.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김 전 실장은 “‘장’이라고 기재돼 있다고 모두 제 지시는 아니고, 간혹 제 지시도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차세현·안효성 기자 chs.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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