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새 전용기 40억 달러 넘어, 계약 취소"…뒤통수 맞은 보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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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6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 당선 이후 좀처럼 기자들 앞에 나서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1층 로비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 앞으로 의기양양하게 다가왔다. 그 옆에는 트럼프와 같은 빨간 넥타이 차림의 손 마사요시(孫正義·한국명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68층 펜트하우스에서 45분 간의 환담을 마친 뒤였다. 이날 면담은 두 사람의 공통 지인에게 손 사장이 요청해 이뤄졌다.

트럼프는 "'마사'가 미국에 500억 달러(58조5000억원)를 투자하고 5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첫 만남이었음에도 트럼프는 손 사장의 이름을 부르며 친근감을 표했다. "멋진 남자" "업계에서 가장 훌륭한 경영자 중 한 명"이란 찬사도 보냈다. 트럼프는 "마사는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다면 결코 이렇게 (투자 약속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으로 인해 외국 자본이 미국에 투자하기 시작하고, 일자리도 늘어나게 됐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곁에 서 있던 손 사장도 트럼프를 "정말로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분"이라 치켜세웠다. 이어 "나는 그(트럼프)가 앞으로 많은 규제를 완화할 것이기 때문에 투자를 약속했다"며 "(트럼프 말대로) 미국은 다시 위대하게 될 것이라 믿고 투자하는 것"이란 말도 했다. 트럼프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투자 설명 자료를 기자단에 들어 보이며 "500억 달러 투자는 앞으로 4년에 걸쳐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손 사장이 투자를 약속한 500억 달러는 소프트뱅크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공동 조성할 예정인 1000억 달러 펀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발 빠르게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트럼프 당선인을 면담한 데 이어 '사업가' 트럼프의 마음에 쏙 드는 비즈니스까지 엮어냈다"며 "미·일 간 긴밀한 행보가 다른 국가를 앞서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정치 지도자에 대한 '투자 약속 로비'에 능한 손 사장과 '비즈니스 대통령 과시'에 목말라있는 트럼프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손 사장은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향후 10년 이내에 스마트로봇·인공지능(AI) 등 신산업 분야에서 5조원을 목표로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2014년에는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만나선 "인도 시장에 100억 달러(11조7000억원)를 넣을 것"이라 공언했다.

손 사장은 2013년 미국 3위 이동통신회사인 스프린트를 220억 달러에 인수한 뒤 4위 이동통신사인 T-모바일을 추가 매입해 합병하려 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규제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를 관철하기 위해 규제 완화를 내세우며 사전 정지작업을 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 "보잉사가 새로운 747 기종의 에어포스원(미 대통령 전용기)을 만들고 있는 데, 비용이 통제 불능 수준이다. 40억 달러(4조7000억원)이상이다. 주문 취소!"라고 공언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체결한 '신 에어포스원' 구매 계약을 전격 취소한 것이다. 기자단 앞에서도 "보잉이 돈을 많이 벌기를 바라지만 그렇게까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거품을 줄이고 군더더기를 쳐 내는 비즈니스맨 출신 대통령이란 점을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보잉 측은 이날 "현 시점에서의 계약 체결 금액은 1억7000만 달러"라고 반박했다. 백악관의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도 "트럼프가 언급한 일부 수치는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반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보호무역 주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해 온 보잉사의 데니스 뮬런버그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일종의 협박 전술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기존 에어포스원은 747-200 기종으로 1991년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대통령 시절부터 사용돼 너무 노후화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미 공군은 올 1월 보잉사와 계약을 맺고 747-8 기종의 새로운 에어포스원을 2018년 이후 공급받을 예정이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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