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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당사 앞서 ‘해체’ 외쳐, 청와대 보이자 ‘와~’ 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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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사상 처음 청와대 100m 앞에서의 시위를 허용함에 따라 3일 6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청와대 인근 도로에서 행진하고 있다. 경복궁 담 너머로 청와대 본관이 보인다. 경찰들이 경찰버스 지붕에 앉아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다. 전민규 기자

법원이 사상 처음 청와대 100m 앞에서의 시위를 허용함에 따라 3일 6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청와대 인근 도로에서 행진하고 있다. 경복궁 담 너머로 청와대 본관이 보인다. 경찰들이 경찰버스 지붕에 앉아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다. 전민규 기자

집회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촛불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퇴진 여부를 국회에 맡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도 민심의 분노는 되레 타올랐다. 촛불 전선은 청와대를 바라보는 서울 광화문광장을 넘어 대통령 탄핵을 결정할 여의도로 확산됐다.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 행렬도 지난주 200m를 넘어 불과 100m 앞까지 다가섰다. 3일 저녁 서울 시내에선 170만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32만여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전국적으로 232만 명이 집회에 참가했다. 10월 29일 5만 명(서울 기준)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매주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여의도로 번진 6차 촛불

이날 제6차 촛불집회의 초점은 ‘탄핵’에 맞춰졌다. 박 대통령이 즉각 퇴진을 거부하면서 현실적으로 남은 방안인 국회의 탄핵소추에 집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즉각 탄핵’이나 ‘탄핵 부결 걱정 말라. 결과 뒤엔 국민 있다. 반대 의원 손봐준다’는 피켓이 등장했다. “즉각 퇴진” “당장 하야”란 구호는 여전했지만 “구속 탄핵” “4월 퇴진 말도 안 돼”처럼 빠른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리를 메웠다.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10월 촛불집회 시작 후 처음으로 여의도로 향했다. 오후 2시 새누리당사 앞에선 3000여 명이 참석한 사전 집회가 열렸다.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내놓은 ‘4월 퇴진, 6월 대선’ 주장에 반대하고 즉각적인 탄핵 처리를 압박하기 위한 자리다. 집회 주최 측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의 박진 공동상황실장은 “오늘은 먼저 새누리당으로 왔다. 정권 퇴진 후 새누리당을 규탄하려 했지만 (새누리당이) 지금 4월 퇴진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새누리당 해체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야유의 함성을 보냈다. 당사를 향해 계란 수십 개를 던지거나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대형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오후 3시 시작된 거리 행진에선 참가 인원이 2만여 명까지 불어났다.

첫 여의도 집회도 경찰과 큰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정치권이 탄핵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계속 해서 여의도로 오겠다는 시민이 많았다. 8살, 6살 아들과 같이 온 최인(45)·이은선(44) 부부는 “아이들이 어려서 지금까지 지켜만 보다가 도저히 안 될 거 같아 뛰쳐나왔다. 새누리당이 계속 탄핵에 반대하면 여의도 집회는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상재(51·서울 마포구)씨는 “만약 탄핵이 안 되면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새누리당도 같이 책임져야 한다”며 “정치권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국민들이 힘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의도 집회가 끝날 즈음인 오후 4시.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효자치안센터 근처에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행 집회 관련법상 100m는 청와대를 향한 시위대가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거리다. 당초 경찰이 퇴진행동에 행진·집회 금지를 통보했지만 전날 밤 법원이 효자치안센터 앞 집회를 허용(오후 1시~5시30분)하면서 길이 열렸다. 집회가 청와대 100m 앞까지 허용된 건 사상 처음이다.

1, 2차 집회 당시의 1300m(세종대왕 동상), 3차 집회 900m(내자동 로터리), 4차 집회 500m(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 이어 200m(청운효자동 주민센터), 그리고 100m 앞. 촛불의 행렬은 갈수록 청와대와 가까워진 반면 경찰의 저지선은 점점 후퇴했다. 참가자들이 효자치안센터를 비롯해 자하문로 16길과 삼청동 126 맨션 앞까지 가득 메우면서 청와대를 자연스레 ‘포위’하는 모양새가 됐다.

대부분의 집회 참가자에겐 청와대 본관이 또렷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인파 사이에선 “청와대가 코앞이네”라는 소리가 자연스레 나왔다. 청와대가 가까워질수록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사회자가 ‘하나, 둘, 셋’으로 신호를 주면 참가자들은 한꺼번에 ‘와’ 하는 거센 함성을 반복해 질렀다. 그러면서 수십 명이 동시에 플라스틱 나팔을 불고 일부는 꽹과리를 치거나 트럼펫을 불기도 했다. “대통령에게 우리 국민의 함성을 보여줍시다” “국민 목소리를 좀 들었으면 좋겠다”는 외침이 쏟아졌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소리를 듣고 대통령의 태도가 바뀌길 희망했다. 촛불집회에 처음 참석했다는 이응혁(60·서울 송파구)씨는 “박 대통령이 우리의 소리를 듣는다고 마음의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의 귀뿐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후 7시에는 참가자들이 일제히 촛불을 끄는 ‘1분 소등’ 이벤트가 지난주에 이어 열렸다. 수많은 인파는 “국회는 밥값 해라”고 외친 후 다시 초에 불을 밝혔다. 퇴진행동 측이 이날 0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자체 실시한 ‘모바일 국민투표’의 중간집계 결과도 공개됐다. 대통령 즉각 퇴진 찬성이 99.6%, 새누리당 반대가 98.9%로 나왔다. 일부 시민은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416개(4월 16일)의 횃불을 들고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했다.

촛불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을 밝혔다. 서울 외 지역의 촛불집회 참가자 숫자는 62만 명(주최 측 추산)으로 집계됐다. 광주광역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시국촛불대회에는 10만여 명이 참석해 촛불을 들었다. 이들은 오후 6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집회를 시작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문 전 대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탄핵에 동참하도록 광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달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선 3만5000여 명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이들은 “국정 농단 박근혜는 질서 없고 불명예스럽게 즉각 퇴진하라”고 외쳤다. 부산은 일주일 만에 두 배 늘어난 20만여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섰다. 제주에서도 1987년 6월 항쟁 후 최대 규모인 1만1000명이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한편 이날 서울에선 보수단체의 맞불집회도 열렸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대연합’ 소속 회원 3만 명(주최 측 추산)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박 대통령을) 마녀사냥에 내몰지 말라”고 요구했다. 여성 인턴 성추행 의혹으로 물러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무대에 올라 “박 대통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을 지킬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정종훈·서영지·윤정민 기자, 이우연 인턴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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