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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마지막 혁명가 퇴장…“라울, 시장 활짝 여는 덴 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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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가 저물고, 동생 라울 카스트로의 쿠바가 열렸다. 쿠바 공산혁명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냉전시대 미주대륙 최후의 공산주의 국가를 밝히던 ‘붉은 별’이다.

카스트로 뼛속까지 공산주의자
미국에 맞서 49년간 쿠바 통치
라울, 실용주의 개혁 속도 낼 듯
중국식 양극화 사회 올까 우려도

피델의 타계로 쿠바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됐다. 피델은 1959년부터 49년간 쿠바를 통치했다. 2008년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넘겨주긴 했지만 형의 그림자는 동생에게 짙게 드리워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였던 형과 달리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라울의 개혁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2011년 동생 라울 카스트로(오른쪽)에게 공산당 제1서기 자리를 물려주는 피델. [로이터=뉴스1]

2011년 동생 라울 카스트로(오른쪽)에게 공산당 제1서기 자리를 물려주는 피델. [로이터=뉴스1]

라울 국가평의회 의장은 26일 자정이 좀 지난 시간 국영 TV방송에 나와 “피델 카스트로가 25일 밤 10시29분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쿠바 정부는 9일의 애도 기간을 거쳐 다음달 4일 장례식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28~29일 아바나 호세 마르티 기념관에서 대국민 추념식이 열리고 30일부터 피델의 유해는 전국을 순회한다. 마지막 도착지는 동부 산티아고 데 쿠바다. 피델이 59년 시청 발코니에 서서 쿠바 혁명 승리를 선언한 뒤로 ‘혁명의 도시’로 불리는 곳이다. 여기서 장례식이 거행된 뒤 피델의 유해는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묻힌다.

피델이 없는 쿠바의 변화는 경제 개혁으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피델의 그늘 아래 있긴 했지만 라울도 지난 8년간 나름대로 자신의 통치를 펼쳐왔다. 2011년부터 기존 사회주의 경제에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했다. 라울은 지난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바나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고 88년 만에 쿠바와 미국 간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공산주의 체제를 고집해 온 피델은 당시 아바나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을 끝내 만나지 않았다.

엔니크 로페스 올리비아 쿠바 역사학자는 NYT에 “라울이 형의 부담을 덜게 됐다. 경제 개혁에 속도를 낼 것”이라며 “쿠바 젊은 층은 시장경제가 더 확대되길 바란다. 관광·무역 쪽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의 변화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관건이다. 공산주의 고수로 인한 국제적 고립과 더불어 미국의 대(對)쿠바 봉쇄 조치는 쿠바에 경제적 어려움만 남겼다. 라울이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선택한 건 미국의 금수조치 해제를 겨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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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기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대선 유세 기간에 “카스트로 정권이 정치·종교의 자유와 정치범 석방 등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양국 국교를 정상화한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미·쿠바 관계가 순항할 수 있을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폴 웹스터 해로 보스턴대 국제외교학 교수는 “쿠바에는 피델을 따랐던 강경 공산주의자들도 여전히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라울 역시 미국 달러를 원하지만 시장경제·민주주의로의 빗장을 활짝 여는 덴 주저하고 있다”며 “라울은 잘못 빗장을 열었다가 중국 같은 양극화 사회가 초래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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