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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스의 끈질긴 압박에 닉슨 사임, 레이건은 진솔한 사과로 지지율 회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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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호 5 면

미국은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성역이 없다. 권력 비리는 물론 사사로운 사안까지 검사에게 다 털린다.


미국에선 1868년 특검 제도가 생기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건 1972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 때다.


닉슨 재선을 획책하던 비밀공작반 5명이 워싱턴DC의 민주당 전국위원회(워터게이트빌딩 6층)에 침입,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됐다. 닉슨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73년 5월 아치볼드 콕스가 특별검사로 임명돼 사건의 전모와 은폐 의혹을 규명했다.


콕스는 사건 해결 열쇠인 ‘백악관 회의 녹음 테이프’ 제출을 백악관에 끈질기게 요구했다. 닉슨은 콕스를 해임하려 했고, 해임에 반발하는 법무장관과 차관까지 잘랐다. 그러나 국민 여론은 닉슨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 74년 7월 29일 하원 법사위는 탄핵안을 가결했다. 닉슨은 하원 본회의, 상원에서의 탄핵 재판을 앞두고 같은 해 8월 9일 은폐 공작을 시인하고 사임했다. 미 역사상 최초의 임기 중 사임이었다.


닉슨 수사를 계기로 미국에선 78년 특검이 상설화됐고 독립적으로 권력 비리를 수사하게 된다.


다음 차례는 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이란-콘트라 스캔들’. 미 정부가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판 돈으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탄로 났다. 적국 이란에 무기를 팔았다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특별검사 로런스 월시는 88년 레이건의 안보보좌관이었던 존 포인덱스터, 올리버 노스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 최측근들을 대거 기소했다. 레이건은 “(부하들에게) 지나친 권한 위임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레이건은 TV에 출연해 무기 스캔들 내용을 소상히 밝히고 겸허히 사과했다. 이를 계기로 레이건 행정부는 지지율을 회복했다.


미 대통령을 겨냥한 대표적 수사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이른바 ‘르윈스키 스캔들’이다. 당초 수사 초점은 클린턴 부부의 ‘화이트워터 게이트’였다.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 힐러리의 친구인 제임스 맥두걸 부부와 함께 세운 ‘화이트워터 부동산 개발회사’의 지역 토지 개발을 둘러싼 사기사건이었다. 93년 6월 화이트워터 관련 서류를 보관하던 힐러리의 동료 변호사 빈센트 포스터가 의문의 자살을 하고 힐러리가 서류를 파기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클린턴 부부는 94년 1월 특별검사 로버트 피스크에게 백악관에서 조사를 받았다. 무죄로 결말이 났지만 이어 8월 케네스 스타가 특별검사를 맡으면서 사건은 클린턴과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의 불륜으로 전환됐다. 4년에 걸친 대통령 수사였다. 클린턴은 98년 말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뒤 99년 상원에서 탄핵 재판까지 받았다. 미 헌정 사상 현직 대통령이 탄핵 재판을 받은 건 1868년 앤드루 존슨 이후 131년 만이었다. 결국 정치적 타결로 상원 재판에서 탄핵안이 부결되긴 했지만 클린턴은 특검 수사를 받으며 유전자(DNA) 감식을 받는 수모까지 당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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