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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당 안에서 보수 개혁 노력…희망 0.1%도 없을 때 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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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승민 전 새누리 원내대표

그가 바빠졌다.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을 찾았을 때도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올 때도 방송 카메라가 조명을 비추며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대구와 광주로 강연을 다녀온 데 이어 24일도 지방 강연을 다녀왔다.

탄핵 표결 의원 양심에 맡기고
투표 참여 방해·회유해선 안 돼
헌법재판소, 특검 결과 상관없이
빨리 결정 내려 국정 혼란 막아야

유승민(58)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원조 친박’이다. 그런 그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자’로 찍혀 지난해 원내대표에서 쫓겨나고, 올해 4·13 총선 때는 공천도 못 받아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권력이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 비판하는 게 온당하다. 권력자가 힘이 빠지면 평소 하던 비판도 안 하는 게 제 스타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21일 인터뷰에서 현 상황을 풀어가는 첫 실마리가 탄핵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3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당에서도 극소수하고만 대화했다”며 “최순실과 3인방이 다 구속됐지만 요즘은 더욱 민심으로부터 대통령 귀가 닫혀 있어 지금 얼마나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3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당에서도 극소수하고만 대화했다”며 “최순실과 3인방이 다 구속됐지만 요즘은 더욱 민심으로부터 대통령 귀가 닫혀 있어 지금 얼마나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일단 국회가 탄핵 표결부터 빨리 해야 합니다. 탄핵 되면 (대통령이) 직무정지되니까…. 청와대고, 장관들이고 제대로 일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나 안보 쪽에 워낙 위험한 폭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시간을 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24일 야 3당이 탄핵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그에게 전화로 몇 가지를 다시 물었다.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면 72시간 이내에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표결은 의원들이 각자 헌법기관으로서 양심과 소신에 따라 해야 하는데 만약 표결 참여를 방해하거나 뒤에서 의원들을 회유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이미 새누리당에서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문 전 대표가 새누리당 의원들도 탄핵안에 서명하라고 한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오만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죠. 국회의원도 아니고, 정당대표도 아닌 문 전 대표가…. 새누리당에서도 김무성 전 대표 같은 사람은 서명을 하겠다고 하던데 그건 본인 뜻 아니겠습니까.”

탄핵으로 가는 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정치인들이 대통령직 사임이나 2선 후퇴를 요구해왔는데, 지난 한 달간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온 행태를 보아서는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정 마비가 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회가 빨리 탄핵안에 찬반투표 하고, 가결되면 헌법재판소도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특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든지 해서 헌법이 정한 180일을 다 채우면 안 됩니다. 그게 대선의 유불리를 떠나 혼란을 막는 길입니다.”
김무성 전 대표가 친노·친박이 아니면 손을 잡겠다고 한 건 새로운 정치세력화로 가겠다는 뜻 아닌가요.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만약 탄핵을 전후해 제3 지대건, 제4 지대건 그런데 나가는 것을 이야기한다면 탈당인데, 만약 탈당을 원하는 거라면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당 안에서 정말 건전한 보수가 다시 일어나기 위한 개혁 노력을 해보고, 그게 도저히 안 되고 희망이 0.1%도 없을 때 탈당은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 남아서 최대한 노력할 겁니다.”
비대위원장 인선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는데.
“일단 지도부가 빨리 퇴진해야 합니다. 그러면 원내대표가 임시로 대행하게 됩니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이 비대위가 실패하고 표류하면 당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이 있습니다. 의원들 손으로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전권이 주어진 비대위가 탄생해야 합니다. 김무성 전 대표와 최경환 전 원내대표가 만난 3+3이라는 게 있는데, 그건 대표성이 없고요. 거기서 대충 합의하고, 의총에서 추대하고, 친박·비박이 5대 5로 갈라 먹어서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129명 전체 의원이 위기의식을 갖고 선출한 비대위라야 당 개혁에 힘을 가질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의 인적 구성으로 ‘혁명적 개혁’이 가능할까요.
“비대위 구성부터 보수 혁명에 맞는 분들을 수혈해야죠. 그리고 당이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분들에게 책임을 묻는 그런 절차도 있어야겠죠. 박근혜 정부가 잘못한 것을 방치하고, 호가호위한 홍위병이나 내시 같은 사람들은 당이 거듭 태어나는 과정에서 꼭 청산돼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가 건전한 보수다, 개혁 보수다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비대위에 인적 청산도 할 수 있는 전권이 주어져야 합니다.”
촛불 민심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를 주장하고 계시는데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을 배출한 책임이 있으니 저희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탈당을 한들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저도 똑같은 새누리당 식구로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께 사죄 드립니다. 그러나 보수가 이번 일로 소멸돼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년 대선 같은 단기적 목표에 집착할 게 아니라 보수 가치를 앞으로 어떻게 지킬 거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늘 주장한 따뜻한 보수로 가고, 진정성 있게 가는 길밖에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에서 ‘중립적 특검’을 얘기하는 걸 보면 특검 수사도 잘 안 될 것 같은데.
“2차 담화에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했는데, 아예 보이콧했습니다. 또 특검을 거부하는 사태는 정말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뜸을 들이다 말을 이어갔다.

“특검을 계속 거부하고 그러면 아휴… 전 그 다음은 상상이 안 되는데….”

“지금도 민심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또다시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지금… 지금도 일반 민심을 대통령에게 얼마나 정확히 전달하는지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소위 3인방과 최순실, 핵심 측근이 다 구속됐지만 나머지 보좌진이 지금도 제대로 안 하는 거 같은데…. 취임 이후 당에서도 극소수만 대통령과 대화를 했거든요. 제가 보면 다양한 얘기를 안 들으셨어요. 요즘은 더더욱 민심으로부터 대통령 귀가 많이 닫혀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얼마나 국민이 분노하고, 원하는 게 뭔지 모르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무성 전 대표는 개헌을 주장했는데.
“저는 다릅니다. 전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상당히 선진국 수준까지 가고, 통일을 이루는 시점까지는 국민의 중간평가를 한 번 받는 4년 중임제가 좋다고 생각해요. 그 대신 저는 국회의원 선거는 중·대선거구제로 가서 국회가 민심을 더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통일 되고 경제수준 올라가고, 정치문화도 성숙되면 내각제로 바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 전에 개헌이 될까요.
“대선 전에 되겠습니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개헌을 얘기한 바로 그날 일이 터져서 동력 잃었고, 정치인들 생각이 다 다릅니다. 대통령과 최순실이 헌법을 안 지켜 이렇게 된 겁니다. 국민이 이게 헌법을 고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 않을 겁니다.”
대구 쪽 민심은 어떻습니까.
“애정을 갖고 있었고, 선거 때 지지했던 분들이 사실 더 괴롭죠. 그런 분들은 보면 말문을 닫은 분이 많습니다. 회한이랄까 자괴감, 부끄러움, 배신감이 더 크다고 봐야죠.”
내년 대선 때 출마합니까.
“제가 대선에 대해 고민 많이 하고, 저 혼자 이리저리 준비를 해온 것도 사실이죠. 이런 사태가 없었다면 멀지 않은 시간에 제 결심을 국민께 밝히겠지만 지금은 그 말씀을 드릴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게 우리나라 유일한 보수정당이 소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사태 이후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느냐, 어떻게 바뀌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고 정치인들 역할이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사법처리만 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옛날로 돌아가면 희망이 없는 거죠.”

원조 친박→짤박→배신자→복당…“대통령 상식적 판단 늘 문제”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5년 대표 비서실장,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는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을 맡았다. 그렇게 가까이서도 ‘비선 조직’을 몰랐느냐고 물었다. 그는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알았다면 그냥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 가지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가 비서실장이던 2005년 의원회관에서 일하고 있던 ‘문고리 3인방’을 공조직인 당 사무처로 옮기게 했다. 또 비서실장이 되자마자 박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그만두게 했다고 말했다. 그때도 박 대통령으로부터 “비서실장이 왜 그런데 관여하느냐”고 질책을 받았다. 인수위 인사도 공개 비판했다.

2014년 박 대통령의 방미 연설문에 외교부도 모르는 ‘중국 경도론’("한국은 중국에 경도된 게 아니다”)이 들어갔다 빠진 것을 두고 그가 “청와대 얼라(어린아이의 사투리)들이 하는 거냐”고 호통을 쳤다. 그 ‘얼라’가 연설문 고치기가 취미였던 최순실씨였을 가능성이 커졌다. ‘원조 친박’은 ‘짤박’이 됐다. 원내대표에서 쫓겨나고, 올 4·13 총선 때는 ‘배신자’로 찍혀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대구 동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복당했다. 17대 이후 4선. 그는 국회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현 정부의 정책을 공박했고, 결국 쫓겨나면서 헌법 제1조를 이야기했다.

그는 “대통령을 겪어 보니 상식적 판단, 이런 부분이 늘 좀 문제가 있어서 ‘이분은 다양한 얘기를 듣고, 훌륭한 보좌를 받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정리=전수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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