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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동주'의 김인우 & 최희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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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2월 17일 개봉, 이준익 감독)에는 낯이 익진 않지만 꽤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이 나온다. 후쿠오카 감옥에 수감된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를 악랄하게 취조하는 일본 고등형사 역의 김인우(47), 윤동주의 시를 너무도 사랑해 위험을 무릅쓰고 시집 출간을 돕는 일본 여인 쿠미 역의 최희서(29). 고등형사는 두 청춘을 서서히 죽음으로 내모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쿠미는 그런 체제에 맞선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을 상징한다. 진심을 담은 연기로 윤동주와 송몽규의 짧았지만 뜨거웠던 삶을 더욱 빛나게 해준 두 배우를 함께 만났다.

(왼쪽부터) 최희서, 김인우 사진=라희찬(STUDIO 706)

(왼쪽부터) 최희서, 김인우 사진=라희찬(STUDIO 706)

‘동주’ 이전에 어떤 작품에 출연했는지 소개해달라.

김인우(이하 김): ‘암살’(2015, 최동훈 감독)에서 독립군의 암살 작전을 돕는 일본인 기무라 역으로 출연했다. ‘깡철이’(2013, 안권태 감독)에선 야쿠자로, ‘미스터 고’(2013, 김용화 감독)에서는 고릴라를 스카우트하려는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구단주로 나왔다. ‘마이웨이’(2011, 강제규 감독)에선 일본군 하사관 역을 맡았다.

최희서(이하 최): ‘킹콩을 들다’(2009, 박건용 감독)에서 역도하는 소녀 중 한 명으로, ‘577 프로젝트’(2012, 이근우 감독)에선 국토대장정단의 일원으로 출연했다. TV 드라마 ‘오늘만 같아라’(2011~2012, MBC)에 필리핀 며느리로 출연한 이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많다.

‘동주’에는 어떻게 캐스팅됐나.

김: 이준익 감독이 ‘깡철이’를 보고 직접 전화했다. 처음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그와 홍대 근처에서 만났는데, 센 느낌과 차분한 느낌을 함께 갖고 있다며 캐스팅을 제안했다.

최: 2년 전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 배우로서 정말 막막할 때, 지하철에서 ‘동주’의 제작자인 신연식 감독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지하철에서 연극 대본을 보며 연습에 몰두해 있는 나를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신 감독이 유심히 지켜본 거다. 그때 신 감독이 저 여자가 만약 같은 역에서 내리면 자신의 명함을 건네겠다고 결심했다는데, 공교롭게 둘 다 경복궁역에서 내렸다. 명함을 건네받은 일주일 뒤, 신 감독으로부터 ‘동주’에서 일본어 연기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를 취조하는 역을 맡은 김인우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를 취조하는 역을 맡은 김인우

둘 다 영화에서 현지인 같은 일본어 실력을 뽐냈다.

김: 난 재일동포다. 배우가 되려고 센다이에서 도쿄로 상경해 연극·영화에 출연하며 안무 강사까지 했다. 돈과 인간관계 모두 잃고 건강까지 악화됐을 때, 우연히 ‘집으로...’(2002, 이정향 감독)를 봤다. 펑펑 울었다. 부모를 일찍 여읜 내게 어머니 같은 느낌을 준 영화였다. 이후 한국영화에 매료돼 8년 전 한국에 왔다. 이정향 감독 작품에 꼭 출연하고 싶다.

최: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일본과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일본어와 영어를 할 줄 안다. 고등학생 때부터 연기가 하고 싶었고, 대학(연세대 신문방송·영어영문학과) 입학식 날 곧바로 연극 동아리에 찾아갔다.


윤동주와 송몽규를 집요하게 심문하는 일본 형사 역이어서 심리적 부담이 컸을 것 같다.

김: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서 한국에 온 거다. 재일동포로서 우리의 슬픈 역사를 잘 알기에, 같은 잔인한 연기를 해도 일본 배우보다 더 실제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영화가 잘돼서 많은 이들이 봤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어갔나.

최: 일본어로 된 윤동주 평전을 읽고, 오스 야스지로 감독의 흑백영화를 봤다. 대사가 많진 않지만 윤동주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감정의 스펙트럼이 제법 넓다. 조선인 유학생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는 일본 여성의 심리를 내면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흑백영화를 많이 봤다. 윤동주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다. 현장에선 1940년대의 일본어 느낌을 내기 위해 신경 썼다. 대본에는 없지만 내가 연기하는 형사는 엘리트 경찰이자, 동생이 만주에서 전사한 슬픔을 가진 인물이라고 상상하며 연기했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시를 사랑한 일본 여인 역을 맡은 최희서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시를 사랑한 일본 여인 역을 맡은 최희서

쿠미는 윤동주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다고 생각했나.

최: 현장에서 이준익 감독이 계속 ‘쿠미는 윤동주를 사랑하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답했다. 시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 윤동주라는 인간도 사랑했다고 봤다. 전차 안에서 윤동주에게 ‘시집 출간하는 게 어때요’라 묻고, 함께 차창 밖을 내다보는 신이 있는데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내가 정말 그 시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문 막바지에 통한의 눈물을 쏟는 윤동주와 송몽규 앞에서 눈빛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김: 형사는 그들이 죄를 저질렀다고 믿고 강압적으로 취조하지만 점점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감독은 형사가 나중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도 그걸 원했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한(恨) 어린 절규가 그의 양심을 건드린 거다. 울부짖는 윤동주의 얼굴에 만주에서 전사했다고 상상한 동생의 얼굴이 겹쳐졌다. 둘 다 부당한 국가 권력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픔이 느껴졌다. 눈물을 비칠 생각이 없었는데 강하늘의 연기에 절로 눈물이 났다.

연기하면서 어느 순간, 강하늘이 진짜 윤동주로 느껴졌나.

최: 카페에서 윤동주와 마지막으로 만나는 신에서 시집 제목을 묻는 쿠미의 질문에 윤동주가 한국말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답한다. 그때 강하늘이 윤동주로 보였다. 쿠미는 강한 여자라 울면 안 되는데 눈물이 쏟아져 결국 세 번째 테이크까지 갔다. 쿠미는 윤동주를 다시는 못 볼 거라 직감하고 그의 시라도 마음속에 평생 간직하려 했을 거다.

김: 윤동주가 ‘우리가 맞는 주사가 뭡니까’라고 물을 때부터 강하늘이 윤동주로 보였다. 박정민도 칭찬하고 싶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신을 찍기 전, 분장할 때부터 연기 몰입을 위해 나를 계속 째려보더라.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동주’가 각자의 연기 인생에 어떤 의미로 남았나.

최: 찍는 과정이 무척 아름다운 영화였다. 모두 한곳을 바라보며 힘을 합쳤다.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김: 내가 ‘집으로...’를 보고 인생이 바뀐 것처럼, ‘동주’ 또한 어떤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김: ‘동주’를 끝내자마자 신연식 감독이 다음 작품도 같이 하자고 하길래 제발 한국인 역할을 시켜달라고 했더니, 단편 인권영화 ‘과대망상자들’(상반기 개봉 예정)에 출연시켜줬다. 한국인 역을 맡은 건 좋은데 대사가 너무 많고 어려워 애를 먹었다(웃음). ‘덕혜옹주’(허진호 감독)와 ‘아가씨’(박찬욱 감독)에도 출연한다.

최: ‘과대망상자들’뿐 아니라, 가수 이난영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에도 인우 선배와 함께 출연한다. 신 감독이 이미연 감독과 함께 준비 중이다. 이 영화에서도 쿠미라는 이름으로 출연한다. 한국어·영어·일어에 능통한 냉철한 매니저 역이다. 인우 선배는 일본 현지 에이전트 역을 맡았다. 지난해 말 촬영을 마친 ‘어떻게 헤어질까’(조성규 감독)에는 코믹한 이미지의 여행 잡지 기자로 나온다.

꼭 출연하고 싶은 영화가 있나.

김: 현재 촬영 준비 중인 ‘군함도’(류승완 감독)에 꼭 출연하고 싶다.

최: 아직 밝힐 순 없지만 최근 대작 영화에 캐스팅됐다. 한국어와 영어에 능한 커리어우먼 역할이다. 존경하는 감독의 작품이어서 더욱 설렌다.


*이 기사는 매거진M 151호 (2016.02.19-2016.02.25)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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