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방송 내용 어처구니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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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5일 새벽 동부 전선 6105부대 장병들과 야간 철책선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연대생 장준호군 (19·천문기상2년) .
전방 입소 훈련 자율화로 자진 응소한 연대생들이 훈련에 여념 없는 동부전선은 영하 16도의 혹한.
눈발이 날리고 몰아치는 강풍에 실제 체감 온도는 영하 3O도 안팎.
『지난해 문무대 훈련은 비교도 안돼요. 하지만 이번이 힘은 오히려 덜 들어요. 시켜서 억지로 하는게 아니니까요』
장군은 『미팅 때 열 번은 우려먹을 좋은 체험을 했다』며 벌겋게 언 얼굴 위에 환한 웃음을 뛴다.
대학생들과 철책선 근무를 하고 돌아온 김문수 병장(25)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여 통솔하기가 훨씬 쉬웠다』며 전방입소 자율화를 환영했다.
『어처구니 없는 대남 방송 내용이 어떤 반공 교육보다 나았다』는 학생들의 말에 소대장 김승렬 중위는『저들이 우리의 정훈 교육을 대신해준다』고 맞받아 한동안 웃음이 터졌다.
연대 이공계 2학년생 4백87명이 이 부대에 입소한 것은 23일 하오1시50분.
중대편성·병기 수여·입소식·안전 교육 등의 절차가 종전에는 상상도 못할 「질서」속에 진행됐다.
위력 시범 시간. 학생들은 벌컨포·1백5mm포·1백55mm포·전차포·토 미사일 등의 제원과 성능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서로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나선다.
지원자가 넘쳐 몇 차례의 추첨을 한다.
강품과 폭설로 차량 통행이 어렵자 부대측은 철책선까지 20여km 도보 행군을 지시했지만 불평하는 학생도 없다.
윤희식군 (생물) 은 『좋은 경험』이라며 『평소에는 올 수 없는 곳 아니냐』고 반문했다.
복통으로 행군 중 쓰러졌던 김명섭군 (천문기상) 이 교육 참가를 고집한 것도 교육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것.
진통이 다소 멎자 김군은『누워 있으려고 온 게 아니다』며 부대측의 만류를 무릅 쓰고 행군을 계속했다.
교육대장 이상출 소령은 『김군의 표창을 상신했다』면서『그간 걱정해온 게 바보스럽게 느껴진다』며 즐거운 표정.
「강제」가 아닌 「자율」이라는 명분이 가져온 효과는 이처럼 엄청난 것이었다.

<동부전선=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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