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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금천시 양천동|집성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고성산 산자락에 화순 최씨 일문 30여 가구가 올맘졸망 처마를 맞대고 있다. 30가구 1백50여명이 몽땅 한 핏줄이다.
입향조는 고려말 금산 지방에서 벼슬을 했던 최원지. 그는 1388년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자 고성산 기슭 순암사에 은거하다 이곳에 가문의 못자리를 잡고 마을이름을 「하노」라 지었다.
그의 아들 3형제 자해 (밀양 부사), 자하 (부정), 자강 (중부령) 등은 각각 조선 초기에 문과에 급제, 벼슬길에 올랐다. 오늘날 화순 최씨는 이들 3형제파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조선조 5백년 동안 하노 마을은 숱한 문·무과 급세자를 배출했다· 이 때문에 금산고을 아전들은 문·무과 급제자들의 뒤치다꺼리에 골머리를 앓을 정도였다는 것.
지금도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두건모양의 바위는 당시 금산고을 아전들이 화순 최씨 가문의 인맥을 끊기 위해 끊기 위해 지나가는 고승의 말에 따라 금천시 삼마산에서 옮겨 놓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마을 중앙에 지붕을 드리운「경원길」는 이 마을 화순 최씨의 성역.
종손 최수동씨(60)는 최원지의 19세 손. 수동씨는 지난해 2월20일 부친이 세상을 뜨자 소상까지 1년간 상복 차림으로 혼백을 모시고 있다.
『「탈상할 때까지 상복을 벗지 말라」는 것이 선친의 유언이었다』고 수동씨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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