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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이색 고교 탐방] 마놀로 블라닉을 꿈꾸는 패션 특성화고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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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여자를 창조했고 마놀로 블라닉은 하이힐을 창조했다.’

이 스페인 출신 패션 디자이너의 구두는 인기 미드에 나오면서 전 세계 여심을 사로잡았다. 그 특별한 디자인에 반한 여성들은 가격표에 0이 하나 더 붙어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제 2의 마놀로 블라닉을 꿈꾸는 학생들이 있다. 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에서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제품으로 만드는 전 과정을 배우며 현장이 요구하는 실력을 키우고 있다. 서울시 유일의 패션 분야 특성화고로, 84.3%(2015년)의 높은 취업률을 기록했다.

한 눈에 보는 학교 정보

연혁

1975 신경여상 개교
2009 DFD그룹 선덕학원 인수(→세그루학원)
2010 세그루패션디자인고로 변경
2014 김두황 교장 취임

학교 현황

의상패션디자인과 2학급, 패션제품디자인과 2학급, 패션비즈니스과 2학급, 웹디자인과 2학급(학급당 52명)

신입생 모집

서울시·인천시·경기도 여학생

입학 전형

일반전형- 중학교 내신 성적순
특별전형- 출결 20점, 봉사 20점, 자기소개서 및 학업계획 20점, 심층면접 40점

소재지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 시루봉로 53


프라다 원단 교복 “패션고잖아요”

왼쪽부터 김예은, 고하은, 노유진 학생.

왼쪽부터 김예은, 고하은, 노유진 학생.

핏감이 탁월한 프라다 원단의 재킷과 신축성 좋은 니트 베스트…. 세그루패션디자인고는 교복도 남다르다. 인근 주민들의 교복 칭찬이 이어지면서 모 일간지의 서울 지역 특성화고 교복디자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패션고라 교복 수선쯤은 예사로 할 것 같지만 의상패션디자인과 2학년 고하은 양은 “교복이 예뻐서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면서 “사이즈 수선 정도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양은 패션 잡지 에디터가 꿈이어서 고용노동부의 ‘기특한 기자단’ 활동을 하고 있다. 기자가 되려면 대학을 가라는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 학교로 2학년 초에 전학을 왔다. “지금은 좋아하는 의상 공부를 실컷 하고 싶다”며 “대학 진학은 나중에 하겠다. 순서만 다른 것”이라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고 양과 같이 인문계를 다니다 전학 온 친구가 세그루패션디자인고에 5명 정도 있다. 오고 싶다고 무조건 받아 주는 건 아니다. 특성화고의 취지를 잘 알고 적응할 수 있는지 면접을 본 뒤 결정한다. 김회재 입학홍보 담당 교사는 “1점 때문에 연연하는 인문계 학생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의 삶의 질이 훨씬 낫다”면서 “자존감이 예전(의 실업계 학생들)과는 몰라보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웹디자인과 2학년 김예은 양은 “중학교 성적이 낮아 사실 고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하지만 세그루에 와 내신 상위권에 오르는 등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가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는 표현도 썼다. 김 양은 “합창대회 지휘자를 하거나 패션쇼 모델로 런웨이에 서는 경험을 해 보면서 성격도 매우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세그루패션디자인고에 입학하려면 중학교 내신 70% 정도만 돼도 된다. 일부 특성화고처럼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해 상위권 학생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일단 취업에 최우선 순위를 두기 때문이다. 인기가 가장 많은 의상패션디자인과는 간혹 50%에서 끊기기도 하지만 탈락이 아니라 2·3순위 지망학과로 이동해 입학을 시킨다. 성적보다는 출결과 성실성, 잠재력 등을 비중 있게 보는 편이다.

패션(fashion)에 패션(passion·열정)을 불어넣다

제품디자인과 2학년 노유진 양은 “구두와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되려고 왔다”면서 “원래 미술을 좋아해 적성에 맞는다”고 말했다. 노 양은 주로 방과후 심화 수업을 통해 자격증을 따고 있다. 야간 자율학습 참여율은 75%가 넘는다. 웬만한 인문계고 수준이다. 쏟아지는 조별 과제도 이때 해결할 수 있어 학생들이 더 원한다고 김 양은 말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세그루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면 알바하기 바빴다. 학생들의 달라진 학업 열정에 교사들은 사실 힘이 든다. 교사들은 아이들 케어하랴, 취업시키랴 집에 갈 틈이 없다고 한다. 김회재 교사는 “학교에 결석한 학생이 있으면 사유를 A4 10장에 걸쳐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낙오되는 학생이 없도록 내 자식처럼 끝까지 추적하는 ‘담임책임제’다. 그는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벗어날 수 없다”는 김두황 교장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고 한다.

‘1교사 1취업처’ 발굴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내 딸이면 여기 보낼까’라는 마음으로 임하라는 게 김 교장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조건이 열악한 곳으로 아이들을 보낼 수는 없다고 원칙을 정했다. 연봉 1800만 원은 넘는지, 4대 보험은 되는지 꼼꼼히 본다. 매출액과 자본금, 직원 수도 따진다. 5인 이하 사업장은 무조건 제외한다. 교사가 아닌 전문 취업지원관도 따로 채용해 업무를 뒷받침한다.

세그루패션디자인고 학생들이 DFD 디자인센터에서 구두 제작을 직접 배우고 있다. [사진제공=세그루패션디자인고]

세그루패션디자인고 학생들이 DFD 디자인센터에서 구두 제작을 배우고 있다. [사진제공=세그루패션디자인고]

취업에 도움이 된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세그루 학생들을 기업 현장에 파견하는 ‘1팀 1기업’ 제도다. 세그루학원의 소유주 DFD 그룹뿐만 아니라 신용협동조합, 박지숙 한복, 라인아트 등 100여 개 업체와 산학합력 MOU를 맺어 학생들의 현장 교육을 지원한다. DFD 그룹은 소다, 키사 등 수제화 브랜드로 유명한 패션 기업. 디자인 인재를 직접 키우기 위해 선덕고 등 4개 학교를 가진 선덕학원을 지난 2009년 인수했다.

교내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세그루 학생 8명이 올해 DFD 디자인센터에서 ‘모녀 커플 슈즈’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신협과는 판매 금액의 일부를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기증하는 ‘소소한 금융’(소녀가 소녀에게) 상품을 개발했으며, 라인아트와는 쇼핑몰을 개설해 학생들이 만든 제품을 판매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돌복, 웨딩드레스 등 대여업도 교내 창업으로 유력한 아이템이다.

서울시 특성화고 취업률 2위

세그루패션디자인고 김두황 교장.

세그루패션디자인고 김두황 교장.

2015년(2016년 2월 졸업생 기준) 최종 취업률이 84.3%까지 치솟으며 서울시 특성화고 중 2위(1위는 서울여상)를 차지했다. 2012년 33.7%에서 비약적 성장을 한 것이다. 남영비비안·플라이쿱·수아트 등 디자인 중견기업뿐 아니라 우리은행·국민은행·SGI서울보증보험 등 금융권에도 진출시켰다. 학생도, 교사도 처음엔 힘겨웠지만 성과가 나타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울 동북부의 침체된 실업계 학교에 다른 특성화고들이 벤치마킹하러 속속 방문할 정도로 대반전이 일어난 데에는 2014년 3월 김 교장의 부임도 한몫을 했다.

김 교장은 먼저 학교 예산을 유치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2015, 2016 연속 중소기업청 인력양성 지원사업에 공모해 연간 1억 7000만 원의 지원금을 따냈다. 청소년 비즈쿨 선도학교로도 지정돼 창업진흥원에서 연 6000만 원을 지원받고 있다. 지난 9월 코엑스에서 열린 17회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에서는 중기청 사업을 하는 162개 상업계 고교 중 1등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학교 축제인 백운제의 패션쇼 장면. [사진제공=세그루패션디자인고]

학교 축제인 백운제의 패션쇼 장면. [사진제공=세그루패션디자인고]

김 교장은 처음 왔을 때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의 의욕도 저하돼 있어서 이를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각은 예사고 조퇴, 결근이 잦았지만 지금은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일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사의 사명감을 유달리 강조하는 내 방침에 잘 따라 준 선생님들이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 교장은 강북의 명문 자사고인 선덕고 교감 등을 지내며 30년을 대학 보내기에만 매진했지 특성화고는 사실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세그루패션디자인고를 결코 직업기술과 취업만 강조하는 기업형 학원으로 만들 생각은 절대 아니다. 교육 목표의 절반 이상을 인성과 리더십 관련 항목으로 채웠다. 스마트폰 없는 아침 독서, 독서인증제를 도입하고 세그루스터디플래너를 제공해 일별·월별 계획을 짜도록 지도한다. 학교생활 우수자들을 데리고 중국 상하이 패션위크를 둘러보는 등 해외탐방 기회도 주고 있다.

김 교장은 “‘선취업 후진학’ 제도를 통해 나중에 대학을 가는 졸업생들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대다수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가 최종 학력이 되겠구나 생각하니 이 마지막 학교에서 뭘 가르쳐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인간으로서 가치 있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 비타민 A에서 D까지 골고루 갖춘 융합형 인재로 기르자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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