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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일본서 되찾아오고 한국사 필수화 앞장선 기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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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역사지킴이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집무실엔 소 모양의 조각품이 60여 개 있다. 그는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처럼 목표를 정하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간다”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집무실엔 소 모양의 조각품이 60여 개 있다. 그는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처럼 목표를 정하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간다”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번에 못 오면 다시는 한국 땅을 못 밟을 것 같았습니다.”

역사학도 꿈 역사경영으로 실현
신입 채용에도 한국사점수 반영

지난 10월 일본에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25억원을 주고 사들여 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말이다. 2009년 프랑스 파리 기메미술관에서 수월관음도를 처음 본 그는 꼭 한국에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큐레이터는 “불교예술의 걸작인데 한국의 국립박물관에는 없다”고 소개했다. 이후 7년간 윤 회장은 전 세계를 뒤져 수월관음도를 찾았다. 올 초 일본의 한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차례 설득 끝에 매입에 성공했다.

기업가인 윤 회장의 두 번째 직업은 ‘역사 지킴이’다. 20여 년간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2006년엔 그해 처음 치러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점수를 신입사원 채용 때 반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4명을 뽑는 신입사원 공채에는 9449명이 지원했는데 이 중 한국사시험 자격증 보유자가 3000명이 넘었다. 입사 후 2주간의 신입사원 교육은 역사 교육과 다름없다. 교육 마지막 날에는 이순신의 해전 루트를 따라 돌고 한산도 제승당에서 참배한다. 내년부턴 청년 대상의 이순신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등과 손잡고 재단 설립 작업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가 ‘역사 지킴이’ 활동을 시작한 건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꿈 때문이다. 역사학자를 꿈꿨던 그는 대학 입시를 두 달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맏이였기에 홀어머니와 어린 네 동생을 책임져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서울대 역사학과 대신 영남대 경영학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대학에선 매일 밤 공사장에서 자재를 지키는 경비 업무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대학 졸업 후엔 농협에 취직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삶의 공허함이 느껴졌다. 어릴 적 그가 꿈꿨던 미래는 ‘역사학자’였기 때문이다. 그 무렵 다시 역사서를 들었다. 틈틈이 조선왕조실록을 읽었고 다음엔 고려사, 그리고 삼국의 역사서를 통독했다. 역사를 배우니 직장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서른 즈음에 대웅제약으로 회사를 옮긴 후엔 더욱 승승장구했다. 40세 전에 모든 생산라인을 책임지는 공장장이 됐다.

여기서 그는 황해도 곡산도호부사 시절 겸제언을 설립한 다산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산은 유배 온 양반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했다. 당시 공장엔 식당이 없어 직원들이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직원 중 절반은 끼니를 걸렀다. 그는 직원들에게 점심을 공짜로 제공할 테니 제품불량률을 줄여 달라고 제안했다. 실제로 식당이 생기자 2%대에 달했던 불량률은 0.5%로 줄었다. 윤 회장은 “유배 온 양반들의 숙식을 해결해 주고 마을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졌던 다산을 따라 한 것뿐”이라며 “역사를 보면 오늘을 사는 지혜가 나온다”고 말했다.

1989년 한국콜마를 설립할 때 일본콜마의 투자를 받아내는 과정에서도 고려시대 개성상인을 예로 들어 계약을 성공시켰다. 27년이 지난 지금 한국콜마는 직원 2000명, 연간 매출 1조원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콜마의 세 배가 넘는 규모다.

‘역사 경영’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윤 회장은 사원들을 교육할 때도 직접 역사 강의를 한다. 매달 발간되는 사보에도 자신이 직접 쓴 역사 이야기를 연재한다. 대외적으로는 2013년 수능 선택과목이던 한국사를 필수화하자는 ‘한국사 지킴이 100만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콜마 내에서는 역사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임원이 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모든 임직원은 1년에 6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역사 관련 서적이다. 2009년부터는 윤 회장을 비롯, 모든 임직원이 12주 동안 주말마다 지리산 둘레길 240㎞를 함께 걷는 역사 탐방을 하고 있다.

‘역사 지킴이’로서의 다음 목표는 역사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이다. 최근엔 역사 연구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세웠다. 삼고초려 끝에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사연구소장으로 모셨다. 윤 회장은 “벽란도를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갔던 개성상인의 기상처럼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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