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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친박 지도부 더 이상 보수 먹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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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용태 의원이 어제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새누리당 이름으로 당선된 선출직 공직자가 내부 갈등으로 탈당하는 게 정당정치의 정도는 물론 아니다.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부른 정치 불신은 우리 정치를 굴곡지게 만든 또 하나의 주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새누리당을 보면 이들의 탈당은 사필귀정이요, 자업자득이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직면한 상황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현직 대통령이 범죄의 공범으로 지목돼 식물 상태로 전락하고 국정은 마비됐다. 그렇다면 청와대보다도 먼저 여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를 꾸려 새로운 정치 활로를 열어 가는 게 당연한 일이다.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 따지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건 새 지도부의 몫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박계는 그런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옹위하면서 자리 보전에 목숨을 걸고 있다. 더 나아가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세력은 당 개혁을 요구하는 인사들에 대해 “나가 주면 생큐” “정치적 패륜”이라고 조롱한다.

친박 정치란 건 박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감싸는 호위 무사 역할을 자처하며, 그로 인한 과실을 독점한 정치다. 지난 4·13 총선에서 보여 준 막장 공천이 그런 친박 패권주의의 하이라이트다. 사실 정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일이어서 기록적인 총선 패배로 경고장을 받았지만 그때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 일 없는 듯 당을 다시 접수하더니 사사건건 국민과 맞서고 있으니 ‘대통령 머슴’을 넘어 ‘사이비 종교집단 같다’는 말까지 듣는 친박이다.

이런 식이라면 친박과 친박이 주도하는 새누리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사리사욕에 눈먼 최씨 일가가 박 대통령과 하나가 돼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 질서를 짓밟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공범 신세가 되도록 방치하고 방조한 건 친박세력이다. 그러니 국가 위기를 부른 국정 농단에 대해 국민은 박 대통령뿐 아니라 새누리당에도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정현 대표는 “상한 국 안에 있는 것이면 그게 국이든 건더기든 손님 입장에선 다 거기서 거기”란 공동 책임론으로 협박하고 있다. 문제는 일말의 책임의식도 없는 이런 오만과 독선이 새누리당을 넘어 보수진영 전체의 분열과 공멸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여당 대선 주자들은 “보수의 가치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새누리당을 해체해야 한다”고 인식을 같이했다. 새누리당 내에선 박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지도부에서, 그것도 박 대통령을 팔아 권력을 누려 온 친박의 입에서 먼저 나오는 게 마땅한 일이다. 나라는 국정 마비를 넘어 국정 붕괴 상황이다. 친박은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박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는 게 그나마 국정 수습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집권세력으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고 의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