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최순실은요? 바이어들의 뜨끔한 질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김유경 경제기획부 기자

김유경
경제기획부 기자

“한국이 신정(神政) 국가인 줄 몰랐다. 꺼림칙해서 대만 회사로 하청을 바꿔야겠다.”

경제 리스크로 번지는 국정 농단
‘무역상사 대한민국’ 뿌리 흔들
국내 정치 갈등 빚다 국정 공백
2008년 아르헨 추락 기억해야

일본 대형 애니메이션 회사로부터 외주를 받는 A씨는 일본인 직원의 농담에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최근 대만 회사가 공격적으로 영업을 벌이고 있어 최순실 사태를 빌미로 용역을 뺏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최순실 사태’는 일본의 관심 뉴스에 뽑히는 등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다. 최순실에게는 ‘操る女’(아야쓰루온나·조종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기업 계열 종합상사에 다니는 한모(42)씨는 요즘 외국인 바이어로부터 “한국 정치에 문제가 없느냐”는 인사말을 자주 듣는다. 1%의 마진을 두고 경쟁하는 치열한 영업현장에서 자칫 계약에 악영향을 주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최순실 사태가 경제 리스크로 번질 조짐이다. 정치 리더십의 붕괴와 각종 특혜 의혹, 여기에 대기업까지 연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무역상사’ 대한민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는 게 영업현장의 목소리다.

외신 보도는 냉소적인 내용이 많고 과장된 부분도 적지 않다. 영국 가디언지는 “사이비 종교 교주의 딸이 국정에 개입했다”고 전했다. 재팬타임스는 “한국인 165명 중 1명이 무당이며, 국회의원과 시·도지사, 기초단체 의원들이 선거철마다 이들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이런 기사에는 “한국은 여전히 구석기시대에 살고 있으며, K-POP과 기술진보의 성과는 모두 무의미해졌다”는 댓글이 달린다.

최근 사태의 악영향은 경제지표로도 나타난다. 지난달 25일부터 미국 대선이 있기 하루 전인 7일까지 열흘간 외국인은 선물시장에서 3조1135억원을 빼갔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열흘간 선물시장에서 빠져나간 3조670억원보다도 규모가 컸다. 환율은 12.1원 급등했고, 국가의 신용위험을 측정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4.13포인트(국채 10년물 기준) 상승했다. 외국인은 사태의 장기화와 사회·정치적 혼란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치와 경제의 두 축 중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며 “아르헨티나가 왜 경제난에 빠졌는지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대 중반까지는 원자재 수출을 통해 견조한 성장세를 일구었다. 그러나 2008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농업계와 100일 넘게 극심한 갈등을 빚었고, 이로 인한 국정공백 탓에 경제는 추락하고 말았다.

보호무역주의가 심화하고 있는 요즘 같은 때일수록 ‘신뢰’와 ‘시스템’이 중요하다. 최순실 스캔들은 한국 경제에 지우기 어려운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김 유 경
경제기획부 기자 neo3@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