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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헌법 절차 따라 매듭 짓자” 탄핵하라는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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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순실 국정 농단 검찰 수사 발표에 반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4차 촛불집회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 지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너머로 어둠에 묻힌 청와대가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4차 촛불집회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 지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너머로 어둠에 묻힌 청와대가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 참모들은 20일 오전 11시 긴장한 표정으로 사무실 TV 앞에 모여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중간수사 발표를 지켜봤다. 검찰이 청와대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 높은 수위로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씨와 공범 관계로 지목하자 참모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참모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도 검찰 수사 발표를 관저에서 TV로 지켜보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청와대의 기류는 이날 오후 정연국 대변인의 브리핑에 반영됐다.

TV 보던 대통령 ‘납득 못한다’ 반응
유영하 변호인 통해 심경 토로
“퇴임 후 고려했다면 천벌 받을 일”

정 대변인은 “수사팀의 발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고, 객관적 증거를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며 “검찰 수사가 공정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 대변인은 “대통령은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헌법상 권리를 박탈당한 채 부당한 정치적 공세에 노출되고 인격 살인에 가까운 유죄의 단정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진행될 특별검사의 수사에 적극 협조해 본인의 무고함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대변인은 “수사팀의 편향된 주장에만 근거한 부당한 정치적 공세가 이어진다면 국정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며 “차라리 헌법상·법률상 대통령의 책임 유무를 명확하게 가릴 수 있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하루빨리 이 논란이 매듭지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 대변인의 발언은 대통령 탄핵 절차에 따라 진행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거취를 맡기겠다는 의미라고 청와대 참모들은 설명했다. 정 대변인은 “대통령은 앞으로도 국정에 소홀함이 생기지 않도록 겸허한 자세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해 현 단계에서 하야(下野)는 고려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이번 주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변호인은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야당에선 “특검 수사 운운은 대통령이 시간을 끌려는 의도”(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라는 비판이 나왔다.

유 변호사는 언론에 보낸 입장 발표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은 민관이 함께하는 정상적인 국정 수행의 일환으로 추진됐고 설립 후에도 문화 융성과 체육 진흥의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해 왔다”며 “특정 개인이 재단 사업 추진 과정에서 대통령 몰래 이권을 얻으려 했다면 이는 대통령과 무관한 개인 비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역대 정부에서도 국가 예산 투입이 어려울 경우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와 출연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공익사업을 진행한 사례가 많다”며 이명박 정부의 미소금융재단, 노무현 정부의 사회공헌 사업, 김대중 정부의 대북 비료 보내기 사업 등을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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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김승유 전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은 “미소금융은 기업으로부터 1원 한 장 걷지 않고 기업이 각각 재단을 만들어 알아서 운영토록 했기 때문에 미르재단 등과는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돈을 거두면 이런 식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유 변호사는 “박 대통령은 변호인에게 ‘맹세코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재단 설립을 추진한 것이고 퇴임 후나 개인의 이권을 고려했다면 천벌을 받을 일’이라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김정하·한애란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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