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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매창 #1. 묵(墨)의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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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하다. 세상은 색깔을 잃었다. 어둠은 탐욕스럽게 풍경을 삼키고 그림자를 지웠다. 빛이 사라지자 제 노래에 지친 새들도 둥지로 돌아가 숨을 죽였다. 어둠은 형체를 찾는 이에게 소리와 감촉 말고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매창은 몸이 기억하는 길을 더듬어 발을 내디뎠다. 걸음걸이에 힘이 빠져 자꾸 발을 헛디뎠다. 목적지를 향한 의지도 함께 힘을 잃었다. 길을 아직 절반도 줄이지 못했다. 졸망졸망한 초가집들 사이 집 둘레에 소나무를 병풍처럼 심은 기와집을 지나면서부터 걸음은 더 느려졌다. 언덕바지를 올라 밤나무 숲에 이르렀을 때엔 뒷 숨이 앞 숨을 밀어내지 못하고 목에 걸려 기침이 더 잦아졌다.

‘월명암까지 갈 수나 있을까?’

매창은 고개를 저었다. 밤나무 기둥을 붙들고 서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믐밤 키 큰 나무들은 어둠에 갇힌 죄수나 숲을 지키는 밤의 정령으로 보였다. 낮이 동물들의 세상이라면 밤은 식물들의 세상이었다. 잎이 무성해진 나무는 더욱 짙은 냄새를 뿜어냈다. 밤꽃이 피고 진 때가 얼마 전이었으니까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을 것이다. 밤나무는 바람에도 더 큰 소리를 내며 맞섰다. 소리는 바람이 아니라 그녀의 뼈 마디마디가 일으키는 것 같았다. 매창은 한참 동안 그 소리에 귀를 내주었다. 어둠 속에서 소리는 생존의 지표였다. 소리로 지형지물을 분간해야 한다. 나무들의 웅성거림 같은 바람 소리가 길을 방해했다. 평생 소리를 팔아서 먹고 살아온 자신이 저 소리만큼 사람의 귀를 잡아당겼을까 의심한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먹빛 하늘에 박힌 북두칠성은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먼 마을에 집집마다 켜놓은 호롱불에서 탱자 색 불빛이 새나왔다. 불빛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 그림자를 만들며 일렁였다. 빛이다. 온기다. 말을 뱉으려 하자 숨이 멎을 듯 기침이 터졌다. 기침 끝에 물컹한 것이 딸려 나왔다. 땅바닥에 피가래를 뱉었다. 피도 어둠에 물들어 검은색이었다. 고개를 들고 숲 아래를 내려다보던 매창의 눈길이 한 곳에 멈추었다. 산비탈 아래 초가집이 한 채 있었다. 가물거리는 불빛이 새나오는 장지문을 보자 간절하게 앉고 싶고 눕고 싶었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남은 기운을 끌어 모아 몸을 일으켰다. 초가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월명암 끝 절벽에서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고자 집을 떠난 지 하루도 안 지났다. 그런데 벌써 집을 찾다니. 무작정 불빛을 향해 걷고 있는 매창의 발길은 누가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헛간이 딸린 한 칸짜리 초가집이었다. 성긴 싸리문은 망가져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녀는 문을 붙들고 숨을 몰아쉬었다. 마당에는 보리를 털다 만 멍석과 보릿대가 어지러웠다. 방 안에서 칭얼대는 아이 소리가 새나왔다. 이어 달랬다 윽박질렀다 하는 아낙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역이 기다리고 있는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기신기신 마루 쪽으로 걸어갔다. 제일 먼저 인기척을 느낀 풀벌레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다급히 울어댔다. 술시가 되어 가솔들이 방으로 들어간 뒤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침묵하려던 뭇것들이 놀라 일어났다.

매창은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믐달이 비스듬히 그녀를 비추었다. 그녀는 까끌까끌한 숨을 길게 뱉어냈다. 흐릿한 음식 냄새가 코로 흘러들었다. 호박과 멸치를 넣은 된장찌개 냄새. 위장으로 내려간 냄새는 그녀의 스러져가는 감각을 흔들어 깨웠다. 풍경도, 음식도, 소리도 잡을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감각은 후각이었다. 시각과 미각과 청각이 서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무너져갔다. 이제는 냄새로 세상을 분별한다. 소의 분뇨 냄새로 살림의 크기를 가늠하고, 곰삭은 두엄 냄새로 남정네의 부지런한 성격을 짐작한다. 익어가는 장 냄새와 김치냄새, 잿물 냄새로 안주인의 엽렵한 몸놀림을 알 수 있다. 냄새는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낸다. 냄새는 살아 있는 것들의 아우성이었다. 꿈틀거리고 요동치고 변하고 자리를 바꾸게 한다. 저 냄새들과 한바탕 어울려 놀았던 젊은 시절이 가슴 저릿하게 그리웠다. 냄새의 한복판에서 울고 웃으며 뒤엉켰던 나날들 덕분에 그녀는 지금 안온한 기억을 덮고 잠을 청할 수 있다.

허균과의 마지막 만남을 생각한다. 벌써 두 해나 지난 옛일이다. 해시가 다 된 늦은 밤이었다. 허균이 거문고로 장한가를 타는 매창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매창아!”

매창은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스스로 지은 매창이라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손을 잡지 않아도 품에 안지 않아도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다리 삼아 상대에게 건너갈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유희경을 사랑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매창아! 부르는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 그가 느끼는 것, 그가 말하려는 것. 설사 알지 못한다 해도 안다고 느껴졌다. 그것 또한 옛날 일이다. 이제 유희경의 각진 얼굴은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하게 뭉개졌다. 허균의 본래 목소리에는 그런 짓눌림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예, 매창이 여기 있사옵니다. 어인 일로 그리 비장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시옵니까?”

허균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매창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얼굴에서도 평소의 호방하고 활달한 기운이 거두어져 있었다. 그 답지 않은 모습이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잠시 일어나 보거라.”

매창은 허균을 잠자코 마주 보다가 조심조심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아끼는 홍화색 비단 치마가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방 안을 한 바퀴 걸어 보거라.”

목소리는 시종 높낮이 없이 진중했다. 매창은 허균이 이르는 대로 그 자리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느리게 떼며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방문 앞까지 걸어가서 몸을 돌려 허균과 눈을 맞추었다. 이젠 무얼 더 해야 하죠? 묻는 눈빛이었다.

“오른팔을 들어 보거라. 그리고 나를 향해 뻗어 보거라.”

매창은 그의 말대로 오른팔을 들어 그를 향해 쭉 뻗었다.

“내 쪽으로 걸어오너라.”

매창은 오른발을 내디뎠다. 다시 왼발을 내디디려 할 때 허균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매창아! 나를 마주 바라보고 걸어오너라. 나한테서 눈을 떼서는 안 되느니라.”

허균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매창은 허균과 눈을 맞춘 채 그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바로 눈앞의 허균이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멀었다. 강물에 치맛자락을 적시며 징검다리를 디디듯 그녀는 시간과 마음을 들여 걸음을 떼 놓았다. 발걸음에 숨이 실렸다.

“잠깐만, 잠깐만 더 거기 서서 나를 바라보렴.”

허균을 바라보는 매창의 눈길이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깊어졌다. 연민도 우정도 사랑도 아닌,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이름을 갖다 붙일 수 없는 깊은 연정이 그녀의 눈에 고였다.

“됐다. 이제 되었다. 다시 이리 와서 내 곁에 앉거라.”

매창은 시선을 거두고 말없이 그리하였다.

“놀랐느냐? 당황했을 것이다. 그럴 줄 알면서도 내 그리 한번 해보고 싶었느니라. 내가 너를 내 앞에서 그리 움직이게 한 소이연을 너는 알리라 믿는다. 바로 내 눈앞에서 나를 위해 이리 오고 저리 가는 너의 몸을, 너의 몸짓을 보고 싶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몸을 움직이는 너를 한 번은 보고 싶었느니라. 고맙다. 너의 몸을 갖지 못한 것을 더 이상 한스러워하지 않으마. 고맙고 기쁘다. 이리 마음이 좋구나.”

“송구하옵니다. 제가 드릴 거라곤…… 대감께 큰 죄를 지었사옵니다.”

“무슨 소리냐? 네 깊은 속은 내가 다 안다. 너에게 무얼 구하고자 그리 한 일이 아니니라. 작은 일들을 너와 함께 하면서 나는 큰 기쁨을 얻었다. 너로 인해 많이 웃었고 많이 기뻤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느니라.”

그날의 허균은 날갯죽지가 잘린 새 같았다. 물 한 방울, 마른 모이 하나 넘기지 못하고 몸을 버르적거리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한 마리 새였다. 그것을 알아본 그녀는 그에게 물 한 방울이 되어주고 싶었다. 좁쌀 한 알이 되어주고 싶었다. 허균 역시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마침내 그의 얼굴에서 철색이 거두어지고 피가 돌기 시작했다. 사람의 일이란 모름지기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에서 맺어지는 것. 그 마음을 알아보는 것이 인연의 뿌리이고 줄기이고 꽃이었다.

방 안에서 드문드문 들리던 애 울음소리가 잦아들더니 곧 잠잠해졌다. 호롱불도 꺼졌다. 가뭇한 달빛이 가까이 다가왔다. 여름밤은 고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짧다. 마루 기둥에 기대앉았던 매창은 스르르 마룻바닥으로 몸을 눕혔다. 집을 나와 숨이 붙어 있는 동안 바깥세상을 맘껏 돌아다니고자 했으나 하루해를 넘기지 못했다. 걸을 때도 말할 때도 숨 쉴 때도 기침은 멎지 않았고 객혈이 쏟아졌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핏자국이 점점이 남아 있다. 평생 그녀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달궜던 피가 밖으로 뛰쳐나오는 거다. 붉고 생생하던 피가 얼마나 어둡고 갑갑한 색으로 변했는지 보라는 듯이.

세 가지가 검어서 고왔던 여인 매창은 어둠에 한 덩어리의 어둠을 보태며 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흑단 같은 머리도, 머루알 같던 검은 눈동자도, 까마귀 깃털 같은 눈썹도 어둠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침침한 달빛에 그녀의 얼굴이 희게 빛났다. 지병으로 창백해진 얼굴이 마지막으로 한번 환히 빛났다. 한때는 이슬에 젖은 매화를 닮았던 얼굴에 쇳조각처럼 차갑고 결연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배에서 올라오던 숨이 가슴에서 나오다가 차츰 위로 올라와 목에서 밭은 숨이 나왔다. 누가 깰까 봐 기침을 참는 것이 병증을 악화시켰다. 들이쉬는 숨은 부드럽게 흘러들지 못하고 그물 같은 것에 턱턱 걸렸다. 그때마다 기침이 터졌다. 기침은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기력을 더 빨리 소진시켰다.

풍수화토로 이루어진 몸은 죽으면 다시 풍수화토로 돌아가는 법. 매창은 밭은기침과 함께 피를 토한다. 무명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엎어진다. 귓가에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만큼이나 신산스러운 삶을 살다간 아버지. 어미는 매창을 낳고 석 달 만에 산욕열로 죽었다. 혼자서 딸애를 키워낸 홀아비 인생이 얼마나 고달팠으랴. 임종에 앞서했던 말이 여직 귀에 남아 있다. 그때 매창은 열두 살, 초경도 치르기 전이었다.

“사람이 마지막으로 눈을 감을 때 딱 한 장면만 나타난다더라. 육신도 정신도 다 없어지고 살과 뼈를 바쳤던 일 하나만 눈앞을 지나간다 더구나. 그것도 잠깐이요, 곧 안갯속 같은 저 세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다. 정녕 죽음이 그러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냐. 나는 요란하고 팍팍한 인생을 살아서 세상 떠날 때는 끊어진 숨대로 고요했으면 좋겠구나. 안개가 변산 앞바다를 삼키듯 그렇게 죽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느니라.”

그녀의 아버지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살찬 사람이었다. 그녀가 눈물을 보이면 가차 없이 종아리에 피가 날 때까지 회초리를 쳤다. 엄살 따윈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했다. 생모의 빈자리를 엄격한 훈육으로 채우려 했다. 그녀가 쓴 시를 읽을 때나 거문고를 가르칠 때 빼고는 얼굴에 웃음을 띠어본 적이 없었다.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허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려고 꾹꾹 눌러 참느라 눈가가 푹 꺼졌다. 그래서 그녀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이제 와서 아버지라니.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간 적은 있었지만 평생 아버지를 속 깊게 떠올려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 말을 이렇게 온 마음으로 되짚은 적은 꿈에서조차 없었다.

“글줄 읽은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는 내 말 허투루 들었을 것이다. 너에게 글을 가르치면서도 그것이 양날의 칼이 될까 두려웠다. 어쩌겠느냐? 네가 그리 타고난 것을. 침묵을 너의 언어로 삼아야 하느니라. 본 것을 절반만 말하여라. 네 생각을 섣불리 발설하지 말아야 한다. 적이 늘어날 것이다. 자기 생각을 가진 여자의 인생에는 슬픔과 파란이 많은 법이다.”

그 말의 무게와 진심을 이제야 제대로 안다. 아버지! 매창은 가슴이 저렸다. 눈물이 자신의 것이 아닌 양 제멋대로 흘렀다. 그러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안개에 삼켜지듯 그렇게 고요히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만 사람의 말도, 만 사람의 비난과 눈총도 다 뒤에 남긴 채. 아마도 단 한 사람의 곡진한 마음 하나 가슴에 담았을 것이다. 늙어진 몸처럼 마음 또한 낡고 낡아 오래전 닳아버린 연정일지언정 가진 건 그것뿐이니. 그녀의 어미와 아비는 금슬이 유별났다 했다. 고운 자태의 어미는 아비의 자랑이었다. 아비는 그 여인을 잃고 매창을 얻었다. 사는 동안 심장을 꺼내주고 싶을 만큼 애절했던 한 사람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고요히 눈을 감았으리라.

매창은 평생토록 죽음을 생각해왔다. 이 말에 과장이 섞였다고 나무란다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죽음에 대한 예감이 그녀 곁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삶은 기약이 없었다. 막상 손바닥에 쥘 수 있을 만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니 오히려 실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절망도, 질병도, 사랑의 열락도, 악착같은 삶의 이유일지언정 죽음의 핑계는 되어주지 않았던 지난날들이 억울할 만큼 죽음은 여름 낮잠처럼 슬며시 몸을 쓰러뜨렸다. 피가 졸아들고 살이 꺼지고 고약한 냄새와 신음을 앞세우고 자리를 튼 병을 그녀는 끝내 이기지 못했다. 이기기는커녕 기다리던 손님을 맞이하듯 버선발로 나가 맞이하는 형국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묵연히 죽음을 맞이했다. 작년 가을, 객점을 닫고 변산 근처 모옥으로 옮겨올 때부터 기다려온 일이었다. 그녀를 걱정하는 허균에게 투정처럼 내뱉었던 말이 그대로 자신의 삶이 되었다.

“저는 잘 지낸답니다. 빈손은 기생의 숙명인 걸요. 속담에 이르기를 기생이 늙으면 삼공일여(三空一餘)라 하였습니다. 삼공은 세 가지가 인생에서 없어진다는 뜻이지요. 재산이 비고 육체가 비고 명성이 비는 것입니다. 남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온데 그건 바로 이야기랍니다. 숱한 사연에 둘러싸여 빈 몸으로 늙어가는 신세, 그게 기생의 일생이지요.”

돌아보면 한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었다, 라고 말하리라. 봄의 생동하는 산천부터 여름의 들끓는 소란, 가을의 고요한 숙고, 겨울의 적멸. 그녀는 무엇 하나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딱 그만큼의 고통을 그녀에게 돌려주었지만 그것조차 그녀는 사랑하였다. 그것들이 손닿는 곳에 있어 기꺼웠다. 손마디가 무뎌지고 손끝에 옹이가 생기도록 거문고를 타도 세상에 나가 마음껏 뜻을 펼치고 싶은 열망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몸을 거꾸러뜨린 그 열병에 스스로 지는 길을 택했다. 평생을 싸워도 이기지 못했다. 내 삶을 내 열정의 제단에 바치리라, 순순히 마음먹었다.

거문고야 설워 마라
나는 너를 버리지 않으마
네 곡조 내가 듣고
내 울음 네가 들으니
이 세상에 너만 한 벗이 어디 있겠느냐

사랑도 날 떠난다 하고
내 몸도 나를 멀리 한다
젊음도 잃고
건강도 잃으면
그때 내게 무엇이 남으리

오늘밤이 지나면 님은 가신다는데 내 어찌 살아가야 할꼬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하러 온 사람
옷고름 끊고 정인 따라간 어미처럼
정 한 조각 남기지 않겠다는 말을 하러 온 님
내 어찌 보내야 하느냐

심장이 졸아들게 하던 그리움을 거둬 가면
내 숨쉬기 수월할 줄 알았는데
왜 이리 숨이 가쁘고 애가 끊어질 것 같으냐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너와 산천을 벗 삼아
남은 생 고요히 살다 가리라

죽은 사람이라 치부하라는 말,
이 내 가슴을 도려내는구나
야속타
산 사람을 어찌 죽은 사람으로 생각할거나
내 속에 살아서 펄펄 요동치는 사람을

거문고야 너 나를 위해
온몸을 울려 석별의 노래를 불러다오
나 또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귀가 되어
네 곡조와 함께 딱 한 번만 울리라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비단치마를 펄럭이듯 너울거리며 다가온다. 그녀는 감은 눈 속으로 이승에서 건질 한 장면을 불러들이고자 애썼다. 단 한 사람의 얼굴을 돌처럼 단단히 몸 안에 끌어안고자 했다. 많이 아파했고 많이 그리워했던 사람. 많이 웃고 많이 울게 했던 한 사람.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워졌다. 굵은 붓으로 종이 위에 한 일자를 쓸 때처럼 검은 길이 눈앞에 지나간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다른 건 없다. 그녀의 인생에는 마지막으로 거둘 한 장면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 길이 지워졌다. 여기가 끝이었다. 지상에서의 삶은 여기까지다. 길이 지워지니 마음이 가벼웠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평생 방에 갇힌 삶을 갑갑해했던 그녀는 그믐달이 그녀를 내려다보는 바깥세상,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삐걱대는 마루에서 마지막 숨을 쉬었다.

‘체온을 잃은 나의 몸은 이미 당신과 다른 세상에 있습니다. 그만 이곳을 떠나라고 재촉하듯이 내 심장의 불길도 꺼져갑니다.’

몸을 떠난 매창의 혼은 그녀 곁을 맴돈다. 온갖 애욕과 갈망으로 얼룩졌던 그녀의 한 생을 담았던 육신은 곧 언 빨래처럼 뻣뻣해질 것이다. 그녀는 연민도 슬픔도 없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매창아…….”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얼마나 오래 간절히 기다려왔던 목소리였나. 가슴팍을 무쇠솥이 누르고 있는 것처럼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처음 느끼는 무거움이었다. 숨이 빠져나올 구멍이 없게 쇳덩이가 몸을 짓눌렀다. 간절한 마음과 달리 눈꺼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매창아, 매창아. 내가 왔다. 그만 눈을 떠라. 너를 만나러 내가 왔다.”

무쇠솥은 점점 무거워져 짓찧듯이 가슴을 눌렀다. 심장이 바스라질 것처럼 고통스러운 숨이 가늘게 뱉어졌다. 한마디만, 한마디 대답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감은 눈꼬리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앞이 까맸다. 완전한 어둠,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둠이었다. 애타게 부르던 목소리는 사라졌다. 어둠이 목소리를 삼켰다. 무쇠솥에 눌린 숨마저 잦아드는 코밑으로 바람이 지나갔다. 이마가 시렸다.

넓적한 검은색 돌이 수만 권의 책처럼 차곡차곡 쌓인 채석강이 멀리 보인다. 매창은 채석강을 뒤로 하고 해변 가운데 앉아 있다. 갯벌에서는 게와 조개들이 제 구멍을 찾느라 분주히 오갔다. 바다는 막 지기 시작한 노을로 붉게 물들며 태양의 마지막 빛을 빨아들였다. 바다는 오색 비단옷을 입고 단정히 앉아 있는 여인처럼 오연한 모습이었다. 매창은 파도도 없이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그녀 옆에는 그녀의 손을 꼭 잡은 한 남자가 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석양을 본다. 그들의 얼굴에 붉은빛이 번져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웃고 있을 것이다. 아마 울고 있을 것이다. 아마 열 가지 표정을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는 무심한 얼굴일 것이다. 그녀가 오래도록 가슴 깊숙이 품어둔 표정이다.

남정네와 나란히 앉아 한곳을 바라보는 것. 은애하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상을 마주하는, 세상에 맞서는 장면. 그것을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다렸던가. 인연은 오고 가는 것. 애간장이 끊어지게 서러워도 헤어져야 하고, 숨이 막히게 환희에 찬 만남에도 마지막은 있다. 그녀의 가슴속은 격정 없이 고요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 그 또한 그녀가 오랫동안 꿈꾸던 것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려는 순간 그녀는 그것들을 얻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울부짖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속한 세상에서 당신을 훔쳐 오고 싶어요. 당신 손을 꼭 잡고 우리를 갈라놓지 않는 세상으로 달아날 거예요. 그곳에서 당신과 나,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인간으로 살고 싶어요. 당신은 나의 전부이고, 나는 당신의 전부인 그런 세상을 단 한 번이라도 살고 싶어요. 오래가 아니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좋아요. 분명 어딘가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과도 무관하게 우리 둘만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예요. 그곳을 찾아주세요. 당신은 나를 위해 그래야만 해요. 꼭 그렇게 해주시어요.”

지금은 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갔다. 과거, 그리움, 기다림, 이 말에는 불이 없다. 뜨거움이 없다. 그래서 이 모든 말들을 다 합쳐도 육체를 만들 수 없고 진실을 지을 수 없다. 격정이 사라지니 오직 평안하다. 흔들림 없는 평화를 그녀는 두 손에 꼭 쥐었다. 그녀가 평생 얻고자 한 것을 눈 안 가득 담고서 이 세상과 이별하려 한다.

‘그리 나쁘지만은 않구나.’

그녀의 얼굴에 잠깐 화색이 돌았다. 그 위로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만 됐다.’

감은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 귓속으로 들어간다.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배꽃이 펄펄 날리는 날 죽고 싶어요. 그것이 그녀의 소원이었다.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죽던 날은 배꽃이 진 자리에 매달린 작은 열매가 몸을 부풀리기 시작하는 하지 언저리였다. 꽃을 볼 수도 없고 열매를 먹을 수도 없는 어중간한 시절이었다. 그녀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어린 배를 한번 보고 싶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것을 끝내 보지 못하는 그녀의 삶도 눈꺼풀과 함께 닫혔다. 이렇게 가벼운 것을. 이렇게 홀가분한 것을. 몸을 놓은 매창의 혼은 깊고 안온한 숨을 길게 내쉰다.


작가소개
1964년 전북 익산 출생
건국대 영문과, 연세대 국제대학원 졸업.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으로 등단.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2014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저서로는 소설집『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포토에세이집『On the road』, 에세이집『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것들』,
소설창작매뉴얼 『소설수업』, 번역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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