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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헬조선' 탈출기『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작가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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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단에서 가장 ‘핫한’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장강명(40)이다. 그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11년간 몸담았던 유력 일간지의 기자직을 버리고, 2년 전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최근 1년 새 『열광금지, 에바로드』『호모도미난스』『한국이 싫어서』『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등 네 권의 소설을 세상에 내놓으며, 단숨에 주목받았다. 문학동네 작가상, 한겨레 문학상 등 문학상도 네 개나 받았다. 더욱 놀라운 건, 세 편의 소설이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고, 현재 두 편의 작품을 집필 중이란 사실이다. ‘다작(多作)’이란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그의 왕성한 창작열이 궁금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 인터뷰”라며 “당분간 집필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호모도미난스』의 영화 판권을 사간 회사가 바로 여기예요.” 자연스레 판권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화제작 『한국이 싫어서』도 여러 영화사에서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그믐』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먹고사는 수단, 돈 버는 방법으로서의 소설 쓰기를 언급하며, 시장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전업 소설가가 된 뒤 상금 외엔 수입이 없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소설가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서전 집필, 기고 등 돈 버는 방법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기사를 쓰며 소모되는 게 싫어 소설가가 됐는데 또 그런 일을 할 순 없지 않나. 정직하게 소설책 판 돈으로 먹고살고 싶었다. 순대국집 아줌마가 열심히 순대국 팔아 돈 버는 건 고귀하고, 존경받을 일이다. 나 또한 그런 상인 의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왜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나.
“지금도 절반은 기자처럼 취재하고 글을 쓴다. 기자 일이 보람 있고 좋았지만, 소모적인 일이 많아서 애증과 회의감이 생겼다.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어 퇴근 후, 밤에 소설을 썼다. 그렇게 쓴 『표백』이 2011년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을 하나 더 써서 이름을 알린 뒤 그만두려 했지만 또 3년이 걸릴 것 같아 지지난해 사표를 냈다.”
사표 낼 때 아내의 반대는 없었나.
“아내도 허락했다. 외국계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내와 합의한 조건은 2014년 말까지 전업 작가로 도전해 보고, 얼마 이상을 벌지 못하면 다른 일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수상해 받은 상금 덕에 그 기준을 한 번에 충족시켰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아내와 합의했다. 시간을 뺏길 것 같아 개도 안 키운다. 집안일을 하며, 식탁에서 글을 쓴다.”
스톱 워치를 켜놓고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
“식사 시간만 제외하고 시간을 잰다. 석 달 전까지 하루 평균 8시간 글을 썼지만 요즘은 해이해져 6시간 정도 쓴다. 작업 시간을 정해 놓고 긴장의 끈을 조이지 않으면 망가질 것 같아 두려웠다. 오늘 아침에도 2시간 24분 동안 작업하고 왔다. 자기 전에 작업 시간과 분량을 엑셀로 기록한다.”
작가의 말에 참고한 레퍼런스를 열거해 놓는 게 특이하다.
“전직 기자로서의 결벽이랄까. 기사 쓸 때 항상 출처를 밝히던 습관 때문인 것 같다.”

『호모도미난스』 장강명 (민음사, 2014),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음사, 2015)

작품에서 20대 젊은이들을 다루는 이유는 뭔가.
“평소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소설로 풀어낸다.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시기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그 세대의 고민이 나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애착을 갖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지금의 20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한다. 예전엔 사회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줬다. 지금은 사회가 줄 수 있는 모범 답안이 없기 때문에, 내 소설 속 20대 주인공들은 돌진하고 저항하는 잉여들이다.”
트렌디한 소재를 찾아내는 기획력이 돋보인다.
“내가 주목받는 이유는 소설가로서의 재능보다 프로듀서로서의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이 싫어서』는 국내 현실에 답답해하는 20·30대가 이민 이야기를 좋아할 것 같아 기획했다. 문학적 아우라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곧 나올 책 『2세대 댓글부대』는 일베와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소재로 했다. 『표백』은 고된 청년세대가 화두로 불거지기 직전에 나왔고,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오타쿠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믐』을 빼곤 모두 트렌드를 탔다. 기획은 기자일 때부터 숙제였다. 지금 뭘 써야 독자의 눈길을 끌까 늘 고민한다. 21세기 현대 문명의 문제가 집약돼 있는 우리나라는 소설가에게 좋은 나라다(웃음).”
『그믐』은 사회 현상을 다룬 전작들과 달리, 개인의 상처를 파고든다.
“매 작품이 내겐 도전이다. 『한국이 싫어서』는 내가 20대 여성 주인공의 생생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임을 증명하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기자를 그만둔 뒤 출간한 첫 작품인데 두 달 내에 완성하는 게 목표였다. 부지런히 책을 내 돈을 버는 게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믐』은 기획으로 승부를 겨루지 말고, 본격 문학을 읽는 독자를 만족시키는 책을 쓰자는 의도였다.”
남북 관계를 다룬, 스케일 큰 스릴러를 쓰고 있는데 그건 어떤 도전인가.
“경제적 이유로 조급한 마음에 책을 빨리 썼기에 대부분의 책이 얇다. 이번에는 50대 남성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선 굵고 두꺼운 소설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런 도전의 끝은 어디인가.
“작가적 야심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같은 대서사물을 쓰는 거다. 여성 캐릭터를 못 다루고, 2000매 분량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그런 작품을 쓸 순 없다. 한쪽 근육만이 아닌, 전신 근육을 만들어 놓아야 그런 대작을 쓸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트레이닝을 하는 거다. 곧 출간되는 호러 좀비물 『눈덕서니가 온다』와 SF물 『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는 연령대와 기호로 세분화된 문학 시장에 다가가기 위한 사이드잡이다. 장강명의 내면엔 소설가와 기획자의 면모가 모두 있다. 모든 장르의 영화를 능수능란하게 찍어내는 이안 감독 같은 필모그래피를 쌓고 싶다.”
작가 장강명의 지명도를 끌어올린 작품은 『한국이 싫어서』다. 사회적 반향을 기대하진 않았나.
“그랬다. ‘장강명에게 공개 반박한다’는 준엄한 질타가 나올 줄 알았는데, ‘헬조선’ 유행에 업히면서 젊은 층으로부터 폭발적 지지를 받았다. 소설 내용으로 평가받은 게 아니었다. 운이 좋았다. 소설 시장이 위축됐기에 누구 하나를 소중한 자원으로 띄워 주려는 분위기도 작용했다. 덕분에 상도 여러 개 탔다. 그런 거품은 금세 빠진다. 작품으로 평가받아야지.”
소설에서 여성 캐릭터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여성 심리를 어떻게 파악하나.
“아내에게 열심히 물어본다. 아내가 감수도 해준다. 나머지 절반은 네이트 판, 일베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취재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남의 생각을 알기 쉬운 시대다. 인터넷이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소설을 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장강명, 사진=라희찬(STUDIO 706)

장강명, 사진=라희찬(STUDIO 706)

작품 속에 자신이 녹아든 사례를 꼽는다면.
“『표백』의 화자인 적그리스도가 나와 성격이 비슷하다. ‘또라이’면서 허당이고, 울컥하는 면이 닮았다. 소설에서 대기업에 취직한 선배에게 대드는 대목이 있는데, 나도 신문사 다닐 때 데스크에 많이 대들었다(웃음).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이 나라에서 못 살겠다’라며 뒷일 생각 안 하고 떠나는데, 그렇게 저지르는 성격도 나와 닮았다.”
문학 공모전을 소재로 한 논픽션을 쓰고 있는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요즘 문학 공모전에 대해 말이 많다. 공채와 학벌 제도가 뿌리 박힌 한국 사회에 대한 비유가 될 거라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간판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고 ‘딱지’와 출신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나 자신이 학벌·공채·공모전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나를 돌아보는 차원에서도 공모전을 열심히 취재하고 있다.”
영화는 얼마나 자주 보나.
“영화를 즐겨 보진 않는다. 봐도 SF물만 본다. 하지만 글은 매우 영화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묘사가 생생하다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순서가 뒤죽박죽인 게 영화적인 편집이라는 거다. ‘스내치’(2000) 등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청춘의 고민'에 대한 장강명 소설 LIST]
『표백』│한겨례출판
▶소설의 주인공들은 틀이 다 짜여 있는 ‘완전한 사회’에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회에 ‘표백’돼 가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 사회에 자신을 드러내는 유일한 길은 자살밖에 없다며, ‘와이두유리브닷컴’ 사이트에 자살 선언을 올리고 24시간 후에 자살한다. 청년 세대의 고달픈 일상과 진지한 고민을 보여준다.

『열광금지, 에바로드』│연합뉴스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 열광하는 한 오타쿠 청년의 실화를 소재로 한 성장 소설. 작가는 기자 시절 자신의 취재 경험에 픽션을 가미해, ‘에바로드’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오타쿠 청년의 성장담을 취재기 형식으로 그렸다. 오타쿠 청년의 삶 속에 ‘IT 세대’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호모도미난스』│은행나무
▶어느 날 지구에 유전자 스스로 거듭 진화해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힘을 갖게 된 신인류가 등장한다. 호모사피엔스의 다음 단계란 의미로, ‘호모도미난스’라 불린다. 우연처럼 찾아온 거대한 힘을 두고, 그 힘을 억누르려는 세력과 좋은 방향으로 다루려는 세력이 대립한다. 여기에 세계 정복을 꾀하려는 호모도미난스들까지 출현한다.

『한국이 싫어서』│민음사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 간 사정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학벌·재력·외모 등 이른바 스펙을 비롯, 자아 실현에 대한 의지와 출세욕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평균 이하의 수준으로 살아가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 주인공이 이민이라는 모험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문학동네
▶고교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동급생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온 남자. 그리고 그의 뒤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피해자인 자신의 아들이 그를 괴롭힌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한 어머니. 자신이 그 여인에 의해 살해될 미래를 알고 있는 남자는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이 아니라, 살인자가 될 그녀를 구하기 위한 길을 택한다.

*이 기사는 매거진M 133호(2015.10.09- 2015.10.15)에 기재된 기사입니다. *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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