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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아주듯 겨울나무에 뜨개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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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입 정보 카페 ‘국자인’ 이미애 대표

이미애 ‘국자인’ 대표가 회원들이 직접 만든 뜨개옷을 입은 덕수궁 돌담길 나무를 안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미애 ‘국자인’ 대표가 회원들이 직접 만든 뜨개옷을 입은 덕수궁 돌담길 나무를 안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서울 정동 덕수궁 돌담길 나무들이 형형색색 예쁜 옷을 입었다. 네이버 카페 ‘국자인’의 회원들이 직접 뜨개질해 만든 ‘겨울옷’으로 64그루 나무 몸통을 감쌌다. 지친 아이들을 안아주는 마음으로 벌인 ‘트리 허그(Tree Hug)’ 행사다. 이미애(55) ‘국자인’ 대표는 “뜨개옷을 입은 나무를 껴안고 사진 찍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입시에만 매몰되면 가족 모두 불행
둘레길 걷기, 독서 모임으로 힐링을

2006년 만들어진 ‘국자인’은 대입 정보 공유의 장으로 출발했다. 이 대표가 서울 대치동에서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며 대학 입시를 위해 모은 정보를 인터넷 카페에 무료로 공개한 것이 시작이었다. 10년 동안 ‘국자인’은 회원 수 7만8000여 명의 대표적 교육 모임으로 성장했다.

“입학사정관제 태동기인 2006년만 해도 정보에 목말라 하는 엄마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보 과잉 상태입니다. 정보 양에 비례해 엄마들의 불안감도 점점 커지고 있죠. 이젠 엄마들에게 마음 다스리는 방법을 전하는 게 더 필요한 상황이에요.”

이 대표는 “자녀 입시에 매몰된 삶은 엄마와 아이에게 모두 불행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행복해야 부모·자식 관계가 건강하다”면서 “엄마들이 지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아이 입시 이후로 미뤄선 안 된다”고 했다.

“아이 입시를 위해 3년 동안 매일 2시간씩 절에 가서 새벽 예불을 드린 엄마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수능을 완전히 망쳤대요. 그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내가 어떻게 했는데, 네가 이럴 수가 있느냐’며 아이 얼굴을 사흘 동안 안 봤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끔찍한 일이죠. 그러려면 차라리 정성을 기울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습니다.”

이 대표는 “아이 성적이 엄마의 자존심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국자인’은 엄마들의 행복과 자존감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함께 책 읽는 ‘책 모임’, 액세서리·가방 등을 만드는 ‘하자맘스 아카데미’, 둘레길을 찾아 걷는 ‘걷기 모임’ 등이다. 노숙자를 위한 목도리 뜨기 등 봉사활동도 했다. 5∼6년 전부터 카페 ‘출석 미션’ 으로 펼치는 ‘아이 안아주기’ 캠페인은 ‘트리 허그’ 행사로 확장됐다. “‘아이를 안아주면서 잔소리도 줄어들고 엄마 자신에게도 힐링이 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아이들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안아주자는 의미에서 2014년 서울시청 앞 광장과 올림픽공원 나무에 뜨개옷을 입혔습니다.”

올해 ‘트리 허그’ 행사엔 ‘국자인’ 회원 70여 명이 참여했다. 300만원을 모아 재료비를 댔고, 8월 말부터 뜨개질을 시작해 지난달 22일 설치 작업을 완료했다. 참여 회원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우리 사회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살면서 아이 자랑이 아닌 내 활동으로 뿌듯한 일은 처음” “이렇게 뭔가를 몰두해서 재미있게 해본 적이 언제였나”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아이뿐 아니라 엄마들의 능력·창의력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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