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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국정 파탄을 경제 회생의 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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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광기
김광기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김광기 경제에디터·경제연구소장

김광기
경제에디터·경제연구소장

최순실 게이트가 현 시점에서 터진 것은 한국 경제를 위해 잘된 일이다. 물론 새로운 국가 리더십이 자리 잡기까지 몇 달간은 사실상의 국정 마비로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될 게 뻔하다. 게다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아 금리가 뛰고 교역이 위축되는 등 글로벌 경제까지 요동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보자. 대통령 주변의 비선 실세들이 활개치며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1년3개월 더 계속됐을 때 우리 경제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지난 4년간 잘못된 리더를 만나 수백 척의 배를 잃은 한국 경제 선단은 마지막 남은 열두 척마저 잃게 되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어두운 진상이 드러난 것은 천만다행이다.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반복됐는지 퍼즐이 풀렸으니 불확실성의 제거라 하겠다. 막연한 기대를 버리고 위기 상황에 맞설 때 살길은 열리는 법이다.

돌아보면 이런 정권 아래서 연 2%대의 경제성장을 이룬 게 오히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들이 민생을 내팽개치고 사리사욕만 채울 때도 우리 국민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제 역할을 다했다. 지난 주말 광화문광장에서 확인된 성숙한 시민의식 또한 경제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이 지쳤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엔 성장률이 1%대 후반으로 미끄러질 수도 있다.

이제 박근혜 정부의 국정 파탄을 반전의 계기로 삼아 경제 운영의 틀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그게 곧 희망이다.

첫걸음은 인사의 적폐를 바로잡는 일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 공직은 물론 금융기관, 일부 민간 단체·기업에 이르기까지 납득이 안 가는 인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도대체 깜냥이 안 되는 이들이 요직에 앉는가 하면, 멀쩡히 일 잘하는 선수들이 밀려나기 일쑤였다. 적임자가 많은데도 후임을 몇 달째 임명하지 않는 자리도 허다했다. 떡이 썩을지언정 남 주기는 싫다는 심보 때문이었을 게다.

정권 창출에 기여했던 공신들도 두 갈래로 나뉘었다. 바른 소리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레이저를 맞고 튕겨 나갔다. 반면 양심을 내려놓고 시키는 일만 하는 이들은 요직을 맡아 승승장구했다. 이들 중 일부 실세는 대통령을 팔아 자신과 연줄이 닿는 이들을 지독히도 챙겼다. “이번 금융기관 인사는 A 부총리 작품이다. B 수석이 공기업뿐 아니라 민간 기업 인사까지 좌우한다”는 등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뒤에선 최순실 자매 등 비선 실세가 한몫 단단히 챙겼던 것으로 이번에 확인됐다.

“정권을 잡았으면 그 정도는 해먹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현 정권에선 해도 너무했다.

이런 인사 난맥상은 정책 추진 동력을 급속히 훼손했다. “끼리끼리 다 해먹으면서 왜 우리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느냐”는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4대 구조개혁이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통분담을 끌어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박근혜 정권에 부역하며 호가호위해 온 분들께 호소하고 싶다. 그 정도면 됐으니 이제 참회하고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추하게 버텨본들 몇 달 내지 최대 1년 아닌가. 새로 국정을 이끌게 될 거국내각 총리와 경제부총리가 나오면 부탁하고 싶다. 제 잇속만 챙기며 경제를 망친 부역자들을 가려내 삭탈관직하라고.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해당 업계나 전문가 그룹에선 그게 누구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 자리를 사명감 있는 인재들로 채울 때 경제가 바로 서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재벌에도 당부하고 싶다. 거부하기 힘든 관행이었다 해도 국민에게 솔직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부패 고리를 끊는다면 앞으로 기업들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께 부탁하고 싶다. 대한민국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하루라도 빨리 마음을 비워 달라고 말이다.

마크 모비우스 미국 템플턴자산운용 신흥시장그룹 회장은 “(이번 사태는) 한국에서 재벌부터 정치까지 모든 부문의 개혁을 촉발하게 될 것이다. 결국 시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광 기
경제에디터·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