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색의 복권을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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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사람은 ‘오방색’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나빠진다. 최순실과 차은택,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샤머니즘같은 것들이 주르르 연결되며 부패하고 불길한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황교안 총리에게 오방색 끈을 들어보이며 “뱀을 드는 것보다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황교안 총리에게 오방색 끈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황교안 총리에게 오방색 끈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오방색(五方色)은 우리나라 전통의 색으로 나쁜 기운을 막고 복을 받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다섯 색은 다섯 방향을 나타내는데 황(黃)은 중앙, 청(靑)은 동쪽, 백(白)은 서쪽, 적(赤)은 남쪽, 흑(黑)은 북쪽이다. 오방색은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신(四神)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동쪽은 청룡, 서쪽은 백호, 남쪽은 주작, 북쪽은 현무가 각각 지킨다.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을 들어갈 때 출입문 천장을 보면 붉은 새 주작이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우주의 중심에 자리한 황(黃)은 가장 고귀한 색으로 여겨져왔다. 왕의 옷을 이 색으로 만드는 이유다. 청(靑)은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쓰였다. 백(白)은 결백과 진실, 순결을 뜻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흰 옷을 즐겨입었다. 적(赤)은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뜻하여 가장 강한 벽사의 빛깔로 쓰였다. 흑(黑)은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오방색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스며들었다. 명절에 어린아이에게 색동 옷을 입히고 궁궐과 사찰에 단청을 칠하는 것도 오방색의 적용이다.

사진은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출입문에서 청와대를 바라 본 모습이다. 천장에 검은 색 현무 두 마리가 얽혀 있다. 흑(黑)은 사람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하니, 멀리 보이는 푸른기와집의 주인이 부디 현무의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지혜로운지 깨달아야만 한다.

사진·글=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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