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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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스탈린 조크」에 이런 얘기가 있다. 한 감방에 죄수 3명이 수용되었다. 한 명은 공장 출근이 5분 늦어 태업죄로, 또 한명은 5분 빨리 나갔다가 간첩죄로, 마지막 사람은 제시간에 출근했다가 반당행위를 위장하려는 것이라 하여 각각 체포 된 것이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를 보면 그게 단순히 조크만이 아니다.
『어떻게 하여 사람들은 이 비밀의 군도에 가게 되는가? 친애하는 독자여, 나처럼 죽기 위해 가는 사람들은 「체포」 라는 과정을 통해 홀로, 그리고 강제로 그곳에 갈 수가 있다.
우주엔 많은 생물이 있고, 그 생물엔 각기 중심이 있다. 우리들 개개인은 하나의 중심이며 따라서 누군가가 문득 찾아와 「너를 체포한다」 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우주는 박살이 나고 만다.
체포는 한밤중의 날카로운 초인종 소리나 사나운 노크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체포는 닦지도 않은 더러운 장화를 신은 비밀경찰의 거만한 침입과 함께 찾아온다.』
그 자신 레닌그라드전투 때 무공을 세우기도 한 「솔제니친」 은 방년 「스탈린」 을 파칸 (소련 속어로 갱 두목이란 뜻) 이라 했다 하여 체포돼 강제수용소에 수감된다. 재판도 없이 8년형을 받고-.
영국 저널리스트「스튜어트·스미드」는 『공산주의의 패배』 라는 책에서 1917년부터 64년까지 공산권에서 비명에 죽은 사람은 무려 8천3백만명이라 밝히고 있다. 그 중에는 지주의 대량 숙청, 집단농장이나 강제수용소에서의 학살 등 소련영토 내에서만 4천5백만명이 죽어갔다. 이것은 1,2차 세계대전 때의 전사자 수보다 많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얄타회담석상에서 「처칠」은 「스탈린」에게 전쟁 중 소련의 전사자 수가 많은 것에 동정의 뜻을 표했다. 그러자「스탈린」 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전쟁보다 집단화하면서 더 많은 희생을 냈지요』
강제노동의 희생자가 얼마나 많았던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스탈린」사후 3년 만인 56년 2월에 열린 소련방 제20차 공산당대회에서 당제 1서기 「흐루시초프」 는 일장 열변을 토했다. 『「스탈린」 은 친히 번문관을 불러 심문방법을 직접 지시했다. 그 방법이란 간단하다.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는 것이었다.…』 바로 30여년에 걸쳐 조작된 「스탈린의 신화」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 31년후인 지난주 「고르바초프」서기장은 「스탈린」 시대의 나쁜 영향이 아직도 소련사회 전반에 남아있다고 지적, 소련의 암흑기를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역사는 소련처럼 폐쇄된 사회에서도 그 진실을 끝내 숨기지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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