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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영양 결핍 막는 ‘ 위 우회술’…2형 당뇨병 완치의 길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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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센터 탐방 민병원 대사내분비센터

민병원 대사내분비센터 강길호 진료원장(왼쪽)과 김종민 대표원장이 당뇨대사 수술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프리랜서 송경빈

민병원 대사내분비센터 강길호 진료원장(왼쪽)과 김종민 대표원장이 당뇨대사 수술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프리랜서 송경빈

11월 14일은 ‘세계 당뇨병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당뇨병연맹(IDF)이 당뇨병 극복을 위해 1991년에 제정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당뇨병 환자는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약을 먹으면서 관리한다. 하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괴롭다. 식단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거나 인슐린을 투여해야 한다. 합병증과 약의 내성에 대한 불안도 안고 산다. 완치는 당뇨 환자의 꿈이다. 의학에서는 이제 수술에서 답을 찾는다. 민병원 대사내분비센터는 당뇨병(2형)을 수술로 치료한다. 치료 목표와 결과는 개선이 아니라 완치다.

기존 수술법과 달리 위 보존
당뇨 환자 맘껏 먹을 수 있어
마른 당뇨 완치에도 효과적

당뇨병을 수술로 완치하는 것이 가능할까. 당뇨병 환자에겐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혈당·당화혈색소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증세가 나아지면서 동반 증상도 하나둘 사라진다. 이미 150명이 넘는 환자가 민병원에서 당뇨 완치를 경험했다.

완치 환자 150명 넘어

당뇨대사 수술은 최근에 개발된 첨단 치료법은 아니다. 세상에 선보인 지 20년이 넘었다. 당초 목적은 비만 치료였다. 당뇨병 치료 효과가 밝혀지면서 수술 건수가 늘고 있다.

수술 원리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원래 우리 몸에선 음식을 먹으면 소장에서 ‘인크레틴’이라는 물질을 분비한다. 췌장을 자극해 인슐린 분비량을 늘리고, 인슐린 작용을 억제하는 ‘글루카곤’을 억제하는 물질이다. 당뇨병에 걸리면 여기에 혼란이 생긴다. 하부 소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GLP-1)은 기능이 유지되지만 상부 소장의 인크레틴(GIP)이 글루카곤 분비를 촉진하는 반란군으로 돌변한다. 즉 당을 몸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인슐린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민병원 김종민 대표원장은 “당뇨병은 엄밀히 말해 인크레틴 시스템이 궤멸된 상태”라며 “혈액 속에 당이 사용되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음식이 잘 조리돼 있어 대부분 상부 소장에서 소화된다는 점이다. 결국 당뇨 환자는 고장난 상부소장 인크레틴만 작동하는 악순환을 겪는다. 당뇨대사 수술은 이 원리를 역이용한다. 위에서 나온 음식물이 상부 소장을 거치지 않고 우회해 하부 소장으로 직접 가도록 소장을 연결하는 수술이다. 그래서 ‘위 우회술’이라고 한다.

김 원장은 “당뇨 환자에게 현미가 좋은 이유는 상부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하부 소장에서 소화돼 흡수되기 때문”이라며 “당뇨대사 수술은 몸에서 고장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정상 기능만 사용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 수술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신해철 사망사건의 원인으로 위밴드 수술이 지목되면서 비만수술 전체가 역풍을 맞았다. 민병원 대사내분비센터 강길호 진료원장은 “당뇨대사 수술은 위밴드 수술과 완전히 다른 수술”이라며 “위밴드 수술은 당뇨 치료 효과도 없는 데다 위험성 때문에 미국·호주 등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이유는 영양결핍 후유증이다. 기존에는 수술 후 음식물이 빠르게 장을 통과하면서 영양이 충분히 흡수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당뇨를 잡는 대신 영양결핍을 떠안아야 했다. 민병원 대사내분비센터는 이런 결점을 보완했다. 영양결핍이 생기지 않도록 위를 최대한 보존한다.

민병원은 특히 우리나라에 많은 마른 당뇨 환자에게 적합하도록 개선했다. 비만형 당뇨가 많은 서양과 달리 동양, 특히 한국인은 마른 당뇨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김종민 원장은 “마른 당뇨 환자는 당뇨 완치와 함께 밥 한 공기를 다 먹는 게 소원”이라며 “위를 보존하는 수술을 통해 영양결핍 없이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위 우회술 단점 개선

학계에서는 위 우회술로 비만 당뇨는 1년 내, 마른 당뇨는 87%가 3년 내 완치되는 것으로 본다. 민병원의 결과는 이보다 좋다. 수술이 적합한 환자를 엄선하기 때문이다.

민병원에선 수술 대상을 2형 당뇨 환자로 제한한다. 면밀한 검사를 통해 2형에서 1형으로 진행되는 당뇨 환자는 걸러낸다. 1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는 당뇨병인데, 인슐린 분비 기능이 남아 있는 2형 당뇨병과는 다르다. 또 췌장 기능이 충분히 유지되는지 확인한다. 실제 이들 검사 결과 때문에 환자 4명 중 1명은 수술 대상에서 제외된다. 강길호 원장은 “1형 당뇨병으로 진행하면 수술 효과를 보기 어려워 검사 결과가 기준에 합당한 환자에 한해 당뇨대사 수술을 한다. 우리 병원의 수술 결과가 좋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의사 가족, 수술 후 약 끊어

믿을 만한 수술인지 알아보려면 의사 본인이나 가족이 해당 수술을 받았는지를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의사 스스로 확신하지 않는 수술은 권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민 원장은 당뇨 환자인 자신의 누이에게 직접 당뇨대사 수술을 했다. 10여 년간 혈당·혈압 조절이 안 돼 약을 먹어왔지만 수술 후 약을 모두 끊어도 될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김종민 원장은 “사실 내 가족도 이 수술의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며 “1년 동안 설득하고 수술한 결과 정상으로 돌아왔다. 본인도 수술 결과에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수술 한 달 만에 혈당수치 정상 수준 회복

인터뷰 위 우회술 받은 당뇨 환자 안성모씨 

서울 중랑구에 사는 안성모(61)씨는 한 달 전만 해도 심한 마른 당뇨 환자였다. 12년을 앓았다. 공복혈당이 340㎎/dL나 됐다. 공복혈당 정상치는 100㎎/dL 이하(126㎎/dL 이상 시 당뇨 진단)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 혈당이 500㎎/dL까지 치솟았다. 기력이 없어졌고 당뇨 후유증으로 어금니가 모두 빠졌다. 안씨는 지난달 8일 당뇨대사 수술(위 우회술)을 받았다. 한 달이 지나자 혈당이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잃었던 성 기능도 되찾았다. 안씨에게 수술 효과를 물었다.

당뇨가 어느 정도 심했나.
“혈당 수치가 높았다. 공복일 때 혈당이 340㎎/dL이었다. 조절이 안 됐다. 49세 때 당뇨 진단을 받았다. 보건소에서 약을 타다 먹었지만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일을 해야 하는데 힘이 안 났다. 항상 피곤하고 짜증스러웠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위·아래 앞니 4개씩만 남고 어금니가 다 빠졌다. 당뇨로 겪은 고생은 말로 다 못한다.”
수술을 받은 이유는.
“집안에 당뇨 가족력이 있다. 아버지가 당뇨병을 35년쯤 앓다가 저혈당 쇼크로 돌아가셨다. 당뇨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엔 당뇨가 완치된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을 받고 나서 믿음이 생겼다. 상담을 받은 날 바로 수술을 결정했다. 당뇨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수술 결과는 어떤가.
“공복혈당이 110㎎/dL 수준이다. 100㎎/dL까지 내려갈 때도 있다. 좋아지는 과정이라고 하더라. 식사 후 2시간 뒤 혈당은 140㎎/dL 정도(200㎎/dL 이상이면 당뇨)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 더 클 텐데.
“수술 전에는 하루에 소변을 10번 넘게 봤다. 당뇨병의 증상 중 하나다. 근데 수술 후에는 하루에 2~3번만 본다. 목마름도 사라졌다. 몸이 정상화되는 게 너무 빨라 스스로 놀라고 있다. 성기능도 회복됐다. 당뇨로 진득했던 피가 개선되면서 미세혈관 장애가 나은 거라고 하더라.”
다른 당뇨 환자에게 추천할 만한가.
“물론이다. 다른 세상을 새로 사는 기분이다. 한 20년쯤 젊어진 것 같다. 나 같은 환자에게 당장 수술 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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