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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실현을 위한 기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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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24면

일러스트 강일구

지인의 아이가 성장 클리닉을 다닌다. 열 살 남짓한 아이가 매일 혼자 주사를 자기 배에 놓는다. 처음에는 아파서 싫어했지만 ‘키 크는 주사’라는 말을 들은 뒤 직접 챙겨서 주사를 맞는다고 한다. 아이는 또래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키였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 모두 평균보다 큰 키를 원해 매달 100만원 가까운 비용과 고통을 감수하고 있었다. 의료의 패러다임이 바뀐 징후다. 과거 의학기술은 생존 연장을 목표로 했다. 항생제의 개발로 감염을 치료할 수 있었고, 항암제는 암 생존률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그 다음은 채워지지 않은 욕구의 충족이 목표가 됐다.


심한 저성장증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성장호르몬 주사는 키가 조금 작은 아이들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사용된다. 학업과 일상생활에 분명한 어려움이 있는 주의력 결핍 치료제가 공부할 때 집중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투석환자의 빈혈을 위해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물질 EPO가 마라톤·사이클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쓰인다. 기형과 외상치료로 시작한 성형수술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는 방법이 되었다. 의학기술이 생존이 아닌 욕망의 실현을 목표로 하게 된 것이다. 욕망은 자기만족과 연관돼 있고, 달성하면 흥분과 정서적 만족감을 얻는다. 처음엔 먹고 살 빵을 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일단 요구가 충분히 채워지고 나면, 그 다음 인간은 욕망의 실현을 향해 눈을 돌리게 된다.


변화의 큰 흐름은 거스르기 힘들다. 그렇다고 어떤 욕망이든 무한정 허용해도 되는 것일까. 욕망을 추구하더라도 윤리적 고려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천적인 조건과 능력을 강화하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하는 것이 옳을까. 역사적으로 사회 계층 간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각자 타고난 능력과 노력, 환경의 도움이 더해지면서 자수성가한 ‘개룡남’(개천에서 난 용)들이 등장했다. 탁월한 재능에 치열한 노력을 더해 돈과 명성을 얻은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성공사례도 많다. 그런데 발전된 기술을 이용하는 데는 큰 비용이 들어간다. 그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다. 특히 상류층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상류층은 돈뿐 아니라 능력까지도 기술로 갖추는 완전체로 거듭날 기회가 열린다. 그 결과 계층 간 이동은 더욱 힘들어지고, 고착화되는 양극화의 문제가 심화될 위험이 있다.


지금까지 세상은 노력이 중요하고,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평등을 말해왔다. 그러나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존재의 자연적 우연성을 통제하려고 하고 있다. 기술로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에 대한 접근성이 자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현재 가장 합리적 방법은 사회적으로 적정욕망에 대한 합의를 가지려는 노력과 지나친 개인의 욕망추구에 대한 대중적 견제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조금씩 타고난 우연한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살아가자. 그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큰 힘이기도 하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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