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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일제 방직 수탈의 현장에서 예술의 거리로…문래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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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희진

문래동은 어떤 동네일까?


2호선을 타고 문래역으로 향하는 동안 내내 들었던 생각이었다. 학교에서 방과후활동으로 듣고 있는 '동시대 시각 문화 현장 답사'를 위해 어찌보면 수동적으로 문래동으로 향하게 되었다. 문래동은 물론 영등포도 가본 적이 없고 금요일에 있었던 사전 교육에도 불참했기 때문에 문래동이 어떤 모습을 가진 곳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활동 안내 문자를 통해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만 겨우 짐작할 수 있었다.

문래예술공단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도착한 줄도 모르고 인포데스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문래 야시장이 선 날이라 시장 점포에 가려 인포데스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문래에 대한 첫 느낌 사람 사는 소리로 가득해 북작북작한 동네였다. 문래 창작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가이드를 만나 곧바로 투어를 시작했다.

문래동의 역사

96년의 문래동 철강유통상가. [사진=중앙포토]

96년의 문래동 철강유통상가. [사진=중앙포토]

문래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군소 방직 공장이 모여 있었다. 당시엔 사옥정이라고 불렸다. 현재의 문래동이라는 지명은 광복 후에 문익점의 목화 전래설과 물레 제작 사실에 연관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공장이 대부분이었던 이 곳에 점차 예술가들이 모여들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요즘 문래동은 철공소와 예술가들이 함께 조형물을 만들기도 하는 등 공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카페나 책방도 생겨나고 있다.

문래동이 어떤 곳이냐고? 고개를 돌려봐!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빨리 문래동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일행은 입구에 멈추어 섰다. 가이드가 야시장의 북적거림에 잠시 가려졌던 방패 모양의 작품을 가리켰다. 작품의 제목은 바가지였다. 왜 제목이 바가지인지 의아했다. 모양도 흔히 볼 수 있는 동그란 바가지 모양도 아니었고 가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명을 들어 보니 문래동 노동자들이 용접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건데 문래동에서는 흔히 '바가지'라고 불리기 때문에 작품 제목도 바가지가 되었다고 한다. 바가지의 안쪽에 문래동에서 실제 일하는 분들의 사진을 넣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다른 철공단지와 구별되는 문래동만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니 다른 작품이 보였다. 단상 위에 올라선 망치의 모습이 확연했다. 이제 문래예술공단의 입구에 있는 두 작품을 보니 문래동이 어떤 곳인지 조금은 명확하게 드러나는 듯했다. 작품의 제목은 ‘못? 빼는 망치’다. 자세히 보니 망치가 못을 뽑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작가는 이 작품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못에 부정을 나타내는 부사 ‘못’의 의미를 담아 못을 빼는 행위로서 문장 속에 흔히 쓰는 말인 ‘못’을 뽑아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때묻지 않은 정취가 있는 곳, 문래동 골목길

문래의 골목에 들어서니 벽화가 펼쳐졌다. 참 예쁘고 옛 건물과 잘 어울렸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벽화는 독일 작가 Katrin Baumgaertner의 작품 우주고양이였다. 문래동의 골목길에 앉아있는 고양이가 우주로 가고 싶어하는 모습을 그린 것 이라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골목길보다 훨씬 큰 세계를 꿈꾸는 고양이가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사회로 나아가려고 하는 나의 상황과 닮아 보였다.

'문래 수호신', '먼지새김' 등 문래동 골목골목에 보물처럼 숨어있는 벽화와 예술적인 간판을 몇 가지 더 보고 나서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한 사진 갤러리였다. 그곳은 내가 가본 모든 전시회,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중에서 제일 작았다. 열 몇 장 정도의 사진이 알맞게 들어가는 크기였다.

전시의 주제는 '무대'였다. 우리의 삶은 연극이고 그 안에 연극의 3요소인 무대, 배우, 관객이 존재한다는 것이 작가의 창작 의도였다. '무대'는 그 중 하나, 무대를 표현한 것이었다. 갤러리에는 열 댓 장 정도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대부분 공사장 주위에 둘러놓는 가림막의 사진이었다.

작가는 어느 날 상암동을 거닐다가 한 공사현장의 하얀 가림막을 보고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거니는 거리, 지나치는 풍경 하나하나가 우리 삶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정말 그래 보였다. 빽빽이 들어선 건물 사이의 하얀 가림막이 영화관의 하얀 스크린 같기도 했고 일상 속 사람들이 바삐 지나다니는 연기가 펼쳐지는 무대 같아 보이기도 해서 새로웠다.

갤러리에서 나와 문래동의 골목 곳곳을 가보았다. 그러던 중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카페에 들어가볼 기회가 생겼다.

문래동의 정체성을 잘 나타낸 벽면. 톱니바퀴가 맞물려 있다.

문래동의 정체성을 잘 나타낸 벽면. 톱니바퀴가 맞물려 있다.

카페의 입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싱그러운 정원이 꾸며져 있다.

카페의 입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싱그러운 정원이 꾸며져 있다.

낮에는 카페, 밤에는 술집으로 사용된다는데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특히 빛나면서 맞물리는 톱니바퀴가 특이했다. 카페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고 문래동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아 좋았다. 베이징에도 798예술촌이라는 문래동과 비슷한 성격의 예술촌이 있는데 문래동은 공장과 예술촌, 카페가 공존한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라고 한다. 카페가 완성되고 다시 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래동의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했다. 게스트하우스는 난생 처음 가보는 거다. 배낭여행 갈 때 많이 이용한다고 듣긴 했는데 과연 호텔이나 펜션과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새로 지은 건물에 있지 않았다. 굉장히 오래된 건물인 것 같았다. 계단이나 건물의 규모, 벽에서 그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갔던 할머니 댁과 사용된 자재나 분위기, 구조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실제로 그 건물은 1970년에 완공된,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건물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지나 마주한 게스트하우스의 첫인상은 좋은 의미에서의 ‘난잡함’이었다. 일단 뭔가 많이 붙어 있었다. 복고풍의 소품들도 많이 놓여 있었다. 묵고 간 사람들의 흔적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입구의 통로에 붙여진 엽서나 메시지들, 여러 가지 물건들. 오래되었고 겉으로 보기엔 차가워 보이는 건물이었지만 안은 따뜻했다. 호텔과는 달리 사람들이 거쳐가는 정겨움이 있는 것 같아 좋았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으로 이동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사람들끼리 바비큐 파티를 할 때 주로 이용된다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옥상에서 고기라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 궁금했다. 그런 게 게스트하우스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묘미이구나 싶었다. 옥상에서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왔다가 문래동이 좋아져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게스트의 직원으로도 일하고 있는 프랑스인을 만나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를 뒤로 하고 한 옥상정원으로 이동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정원이었다. 꽃들과 허브들과 야채가 심겨 있었다. 문래동 주민들이 함께 일구는 것이라고 한다. 문래동 주민들은 방문객이 그 정원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옥상카페를 만들어놨다. 옥상에서 재배한 고추로 만든 쿠키·과자, 옥상에서 재배한 허브로 만든 차, 생수 등이 놓여 있었다. 안 그래도 계속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던 참이었는데 우리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좋아했다. 특히 고추로 만든 쿠키가 인상적이었다. 달달하면서 알싸한 매운맛이 있었다. 하지만 강한 맛이 아니라 박하 같은 매운맛이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문래올래 투어의 기획자 사무실이었다. 처음엔 이 투어가 영등포구청이나 서울시청 같은 공공기관에서 기획한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문래동에서 보노보C라는 작업실을 하고 있는 이소주 작가가 문래동을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직접 답사를 하면서 코스를 짠 것이다. 공모전에서 1등을 해 지원금을 받아 문래올래 투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참여한 10월 15일 문래 올래 투어에 공공기관 관련자들도 함께했다. 공공기관에서 문래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같아 다행이었다.

안경진 作 Moon Robot

안경진 作 Moon Robot

투어가 끝나고 문래역으로 가는 길에 마저 문래동을 둘러보았다. 길가에 자연스레 놓여진 조형물들 때문인지 돌아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다. 높은 빌딩들에 가려진 것 같아도 역사와 예술로 빛나는 문래동에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철부지(鐵阜地) 문래 문화투어 올래? 문래!

일정

매월 둘째, 넷째주 토요일(11월 까지) 오후 3시 출발

모집인원

15명(선착순 모집)

행사 장소

문래창작촌(cafe 수다)

투어비용

1만원

포함내역

지도, 가이드

준비물

편안한 옷차림, 만나는 이들과 친구과 될 열린마음, 빅워크 앱

문의

글=황희진(서울국제고 1)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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