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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무엇이 박근혜를 추락시켰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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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우리가 그저 ‘내가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데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추락시킨 스캔들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응시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한국 정치문화의 어떤 요소가 극소수 사람들이 국가 정책을 변덕스럽게 좌지우지하도록 허용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식자층 수동성이 통제 불능 낳아
인물·정책 아니라 정치문화에 문제
염치 사라지고 문화와 도덕은 퇴락
높은 윤리성으로 정치인 압박해야

만약 영향력 있는 식자(識者)들이 근래 역사상 최악의 정부 운영을 목격하고도 그토록 수동적이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토록 통제 불능이 되지는 않았다고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나는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몰랐지만 많은 관계·재계 사람들이 청와대의 비밀스럽고 무책임한 정책 결정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 왔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전문가의 정기적인 조언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거의 예외 없이 한국의 최고 엘리트들은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요구할 필요성이나,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동료 시민들이 수년간 지속된 정치 위기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특별히 느끼지 못했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여러 차례 대화할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들었고 이런저런 자리에 누가 임명될 것인지에 대한 추측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도 “무엇이 한국 사람들에게 최선인가”를 묻는 것을 듣지 못했다. 문제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정책이 아니라 정치문화다.

진실을 직시하자. 오늘날 대한민국에 최대의 위협은 북한도 경기침체도 특정 정치인의 행태도 아니다. 가장 큰 위협은 문화적 데카당스(decadence·퇴락)의 확산이다. 우리의 문화 속에서 개개인은 민족의 미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들은 별생각 없이 음식, 술, 성적 쾌락, 휴가와 스포츠에 탐닉한다. 단기적 만족이 인생 목표가 됐으며 희생의 가치는 사라졌다. 이런 게 전형적인 퇴락이다.

시장 수요를 창출하려는 잘못된 노력 때문에 우리가 인간 본성의 원시적인 힘들을 풀어놓았다는 게 비극이다. 그 힘들은 전통 한국 사회에서 요구됐던 합리성, 자제력, 마음 챙김(mindfulness)을 대신해 우리 젊은이들에게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단 몇 분만 텔레비전을 봐도 오늘날 한국을 위협하는 기괴한 문화적 퇴락을 목격할 수 있다. 생각 없이 무절제하게 꾸역꾸역 음식을 먹어 가며 오감을 만족시키는 장면이 끝없이 반복된다. 20여 년 전에는 ‘포르노그래피’라는 이유로 금지되었을 차림새의 여성이 광고에 나온다.

얼마간 상품을 팔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전략은 모든 수준에서 가버넌스 기반을 약화시키는 도덕적 퇴락을 초래한다. 이제 국가의 복지, 안보나 가치와 무관하게 되어 버린 정책은 부와 권력을 쌓는 기회로 전락했다. 사회 전체를 이러한 퇴락이 차지했다면 우리는 경제 정책이나 기술 정책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염치’가 사라진 것도 이러한 한국 문화 쇠퇴의 한 원인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나이 든 부모를 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 그야말로 창피하고 그릇된 것으로 간주됐다. “군자는 홀로 있을 때마저도 조심해야 한다(君子?其?也)”는 말이 표현하듯 도덕적 의무가 내면화돼 있었다. 윤리는 남의 이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지난 세기에 한국인들은 점차 이러한 윤리의 강조를 제한적·억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즉시 만족’으로 표상되는 현대 생활과는 맞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게 됐다.

염치의 상실로 사람들은 자녀들을 보살피고 일터에서 책무를 다하기만 하면 자신이 도덕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됐다. 즉 주위 사람들 행동의 윤리적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사라졌다.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디지털 표현의 시대, 주변의 이미지가 끊임 없이 바뀌는 시대에는 인과관계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진다. 우리는 우리가 매일 하는 일과 우리 주변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일 사이의 관계를 더 이상 명료하게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는 대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 있을 때에도 일회용 컵을 쓴다. 종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환경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카페 종업원들을 건방지고 무례하게 대한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우리나라 문화를 깎아내린다는 개념이 없다.

우리는 한국 유교 문화에서 최상의 좋은 것들을 복원해야 하며,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로 도덕과 연관됐다고 인식해야 한다. 독서·식사·담소를 포함해 우리의 모든 행위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 삶의 도덕적 의미를 다시 통제할 수 있어야만 우리는 건강한 정치문화 만들기에 착수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 본성을 바꿀 수는 없지만, 모든 삶의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윤리적인 행동이 기대되는 문화를 재확립함으로써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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