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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이렇게 ‘럭키’한 흥행을 봤나! 600만 명 사로잡은 ‘유해진표’ 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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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제목의 영향일까. 영화 ‘럭키’(10월 13일 개봉, 이계벽 감독)가 제목처럼 아주 ‘럭키’한 흥행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현재 ‘럭키’의 누적 관객 수는 638만 명(11월 7일 집계 기준). 개봉한 지 25일이 지났지만, 평일에도 평균 8만 명 이상의 관객을 꾸준히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순위에서도 ‘럭키’는 7위를 기록 중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6위 ‘곡성(哭聲)’(5월 12일 개봉, 나홍진 감독, 이하 ‘곡성’)의 흥행 기록(687만 명)을 넘어설 가능성도 크다. 한국 코미디영화에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럭키’의 이유 있는 흥행 비결을 알아봤다.

‘럭키’의 흥행 비결 분석

극장가 비수기? 입소문 타고 흥행
10월은 전통적으로 ‘극장가 비수기’로 통한다. 9월 추석 시즌 이후부터 12월 크리스마스 전까지, 약 두 달 동안이 한국 영화계의 휴식기인 셈. 그래서 이 시기에는 대작 영화들이 개봉을 피하고, 주로 외화나 흥행 리스크가 적은 중급 영화(제작비 20~50억원)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역대 박스오피스 흥행 순위를 살펴봐도, 이 시기에 개봉해 흥행한 한국영화는 ‘타짜’(2006, 최동훈 감독, 568만 명)와 ‘완득이’(2011, 이한 감독, 531만 명) 정도다.

이 틈새시장을 노리는 영화들 사이에서 ‘럭키’는 그야말로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코미디 장르 사상 최단 기간에 관객 수 100만·200만·300만·400만·500만 명을 돌파했다. ‘럭키’의 제작비는 40억원. 손익분기점이었던 관객 180만 명은 이미 개봉 4일 만에 돌파했다. ‘이례적인 흥행 돌풍’ ‘기적의 스코어’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물론 대진운이 따른 것은 사실이다. ‘아수라’(9월 28일 개봉, 김성수 감독)의 뒷심이 빠지며 한국영화 중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럭키’의 흥행을 그저 ‘빈집 털이’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럭키’는 썰렁했던 비수기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닥터 스트레인지’(10월 26일 개봉, 스콧 데릭슨 감독)가 개봉하면 흥행세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듯, 현재 박스오피스 ‘쌍끌이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먼저 영화를 본 관객의 입소문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웃음’으로 관객의 피로감 해소
우선 ‘럭키’는 ‘코미디영화는 흥행에 한계가 있다’는 통념을 깨뜨렸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가 지닌 강점을 “코미디 그 자체”라 평했다. “진지하고 기괴하며 폭력이 난무한 영화들로 인해 피로가 쌓인 관객이,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찾았다”는 것. 올해 흥행한 한국영화를 살펴보면 이러한 동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부산행’(7월 20일 개봉, 연상호 감독) ‘밀정’(9월 7일 개봉, 김지운 감독) ‘곡성’ ‘아가씨’(6월 1일 개봉, 박찬욱 감독) ‘아수라’ 등은 각각 좀비·액션·미스터리·스릴러·누아르 장르로, 감정 소모가 큰 ‘센 영화’들이었다. “‘럭키’에는 욕설이나 과한 폭력이 없어서 더욱 재미있게 즐겼다”라는 다수의 관객 평이 이를 뒷받침한다.

기존 한국형 코미디와 다르다는 점도 ‘럭키’의 흥행 요인 중 하나다. 10년 전만 해도 ‘조폭 마누라’ 시리즈(2001~2006), ‘두사부일체’ 시리즈(2001~2007), ‘가문의 영광’ 시리즈(2002~2012) 등 조폭 코미디영화 시리즈가 붐을 이뤘다. 하지만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계속 등장하며 관객이 외면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후에는 ‘앞에서 빵빵 웃음을 터뜨리고, 뒤에서 펑펑 울리는’ 신파 공식이 유행했다. 물론 ‘럭키’에도 살인청부업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폭력의 강도는 낮다. ‘럭키’의 킬러(유해진)는 화려한 칼 기술로 김밥을 썰고, 어쩔 수 없이 내뱉는 욕설 한마디에 스스로 안절부절 못하는 식이다. 또한 코믹하게 진행되다 반전을 일으키지만, 신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눈물보다 ‘꿈을 이룬다’는 감동과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엔딩은 시국이 어지러운 지금, 관객에게 웃음으로 위로를 전한다.

‘믿고 보는’ 유해진
‘럭키’의 흥행엔 유해진에 대한 대중적 호감도가 크게 작용했다. 물론 인지도 있고 호감도 높은 배우라 해도, 그것이 작품의 흥행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유해진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유해진은 ‘럭키’에서 살인청부업자였지만,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진 뒤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을 무명 배우로 착각하는 형욱을 연기한다. “형욱은 작은 단역 배우에서 신 스틸러가 되는 인물이다. 연기할 때 나의 무명 시절 경험을 참고했다”는 그의 말처럼, ‘럭키’ 속 형욱과 실제 유해진은 절묘하게 겹친다. 1997년 영화 ‘블랙잭’(정지영 감독) 의 단역으로 데뷔한 그는, ‘신라의 달밤’(2001, 김상진 감독) ‘공공의 적’(2002, 강우석 감독)으로 대체 불가능한 감초 연기를 선보이며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 이후 ‘왕의 남자’(2005, 이준익 감독) ‘타짜’ ‘전우치’(2009, 최동훈 감독) ‘이끼’(2010, 강우석 감독) ‘해적:바다로 간 산적’(2014, 이석훈 감독) 등 수많은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명품 배우’로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갔다. 여기에 TV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2014~, tvN)에서 인간적이고 친근한 매력을 발산하며 전 세대에 고루 지지를 얻고 있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는 “코미디영화는 배우와 캐릭터가 정확히 일치해야 흥행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해진은 ‘럭키’와 잘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 속에는 액션·코미디·로맨스·배우 역할까지, 유해진의 스펙트럼이 모두 드러나 있지 않나.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유해진이 출연한 기존 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이 ‘럭키’ 흥행의 이유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관객 600만 명이 유해진을 보기 위해 기꺼이 극장을 찾았다. ‘럭키’의 성공은 곧 ‘믿고 보는 배우’로 우뚝 선 ‘유해진의 성공’이다.

예상 뒤집고 좋은 성적 거둔 코미디영화

‘코미디 장르는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를 완전히 뒤집은 영화들이 있다. 개봉 전 누구도 흥행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놀라운 성적을 거둔 영화들의 성공 포인트를 짚어 봤다. 2010년 이후 개봉작을 기준으로, 관객 400만 명 이상 동원한 영화 중에서 선정했다.

‘7번방의 선물’(2013, 이환경 감독)
관객 수 1281만 명. 어느 누가 ‘7번방의 선물’이 ‘1000만 관객’을 넘을 것이라 예상했을까. 당시 유행했던 ‘부성애’ 코드와 웃음과 감동, 눈물 쏙 빼는 신파로 역대 국내 코미디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수상한 그녀’(2014, 황동혁 감독)
관객 수 865만 명. 심은경을 ‘최연소 흥행 퀸’으로 만든 영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4, 크리스 벅·제니퍼 리 감독)의 흥행 바람 속에서도 유쾌한 복고 음악과 심은경의 열연이 관객 마음을 사로잡았다.

‘써니’(2011, 강형철 감독)
관객 수 736만 명. 제작비를 많이 들인 것도(총제작비 55억원), 눈길을 사로잡은 스타가 출연한 것도 아니었지만, ‘써니’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했다. ‘칠공주’의 활약, 그 시절 유행한 음악 등 과거의 앨범을 꺼내 보듯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40대 이상 여성 관객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김주호 감독)
관객 수 490만 명. ‘도둑들’(2012, 최동훈 감독)의 흥행 열풍을 뚫고 코미디 사극의 흥행을 이끌었다. 조선 시대의 ‘얼음 전쟁’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와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오락 블록버스터’라는 점이 관객에게 어필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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