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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총수 독대 때 기금 출연 압박했다면 뇌물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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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순실(60·구속)씨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조사로 전면 확대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 총수 7명을 독대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안종범(57·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다이어리와 정호성(47·구속)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도 이 같은 정황을 확인했다.

작년 7월 청와대서 7명 따로 만나
검찰 “필요하면 총수들 부를 수도”
전경련·현대차 간부는 이미 조사
모종의 대가 요구했는지도 수사
해당 기업들 “우리는 피해자” 주장
독대 사실 부인하거나 답변 회피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8일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53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며 “각 기업들이 어떤 배경 속에 출연금을 냈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필요하다면 총수들도 불러 조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겠다.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도 고려하겠다. (기업들이) 사실에 부합하는 얘기를 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총수들도 불러 조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전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박모 전무와 이모 상무를 조사한 데 이어 8일 현대차 박모 부사장 등을 불러 그룹 총수의 대통령 독대 여부 및 거액의 출연금을 낸 이유 등을 캐물었다. 만약 검찰 조사로 대기업들의 재단 출연금이 ‘뇌물’로 판단되면 박 대통령은 최씨에게 건네진 청와대 문건 관련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와 함께 뇌물 혐의로도 조사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주목하는 부분은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이뤄진 대기업 총수 접견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일 총수(급) 기업인 17명을 청와대 오찬간담회에 초대해 “한류 확산을 위해 기업들이 도와줘야 한다. 재단을 만들어 민관 합동으로 지원하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이튿날인 25일에는 이중 7명의 총수를 따로 만났다. 삼성전자 이재용(48) 부회장, 현대자동차 정몽구(78) 회장, LG 구본무(71)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64) 회장, 한진그룹 조양호(67) 회장, CJ 손경식(77) 회장 등이 참석자로 거론된다. SK그룹에서는 최태원(56) 회장 대신 김창근 SK수펙스협의회 의장이 참석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 자리의 ‘성격’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모금 독려가 ‘선의’였는지, 각 기업이 처한 상황을 이용한 ‘압박성 강제 모금’이었는지를 들여다본다. 또 기업들이 박 대통령의 제안에 모종의 대가를 요구했는지도 조사 중이다. 당시 7개 기업은 어려운 사정이 각기 있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투병 속에 수년째 이 부회장으로의 후계구도 재편이 과제였다. SK와 CJ, 한화는 각각 최태원 회장, 이재현 회장, 김승연 회장에 대한 광복절 사면을 기대했다. 실제로 최 회장은 독대 다음달 박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일성과 함께 특별사면됐다. 이 회장은 올해 8월 사면됐다. 반면 김 회장은 올해도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롯데 신동빈(61) 회장은 올해 2월 말~3월 초 박 대통령을 독대했다고 한다. 당시 신 회장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의 내사 대상에 올라 있었다. 박 대통령이 피내사자 신분의 기업 총수를 불러 기금 모금 협조를 요청했다면 ‘강제성’ ‘대가성’이 내포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무렵(2월 26일)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던 부영도 70억~80억원대 지원금 요청을 받았다. 안 전 수석이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 등과 함께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을 만나 “하남시 체육시설을 지을 것”이라며 건립 비용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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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대기업들은 “(우리는 돈을 뜯긴)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한진·롯데는 “독대 자체가 없었다”고 공식 부인했다. 나머지 기업들은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고 있다.

한편 박 대통령 조사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다음주쯤 윤곽이 잡힐 것이다. 마음이 급하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먼 심정이다”고 말했다.

윤호진·김기환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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