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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심야까지 힘 소진한 두 후보, 막판 판세는

중앙일보

입력

7일 밤 9시 10분(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이 선거전 597일의 대장정을 결산한 곳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 앞. 1776년 독립선언을 했던 곳 앞에서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등장을 선언하기 위함이었다. 옥외광장에는 8도의 쌀쌀한 기온에도 4만 명이 모였다. 지금까지 클린턴의 최대 청중 동원(지난달 10일 오하이오) 1만8500명의 2배가 넘는 인파였다. 막판 세몰이를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한 자리에 모았다. 자신의 지지자인 유명 록 가수 본 조비,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불러 공연까지 곁들였다.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펜실베이니아에 마지막 밤 모든 자원을 쏟아 부은 것이다.

오바마는 "이 파이터(투사), 경험 많은 정치인, 어머니이자 할머니, 그리고 애국자에게 승리를 안겨주자"며 격정적 연설을 했다. 이어 등단한 클린턴은 "마지막 도움이 필요하니 당장 옆 집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돌려 내일 투표장에 많이 나가도록 독려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힘을 소진한 탓인지 오바마나 미셸에 비해 연설에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클린턴은 마지막으로 자정 무렵 노스캐롤라이나로 이동해 투표를 독려했다.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에게 소폭 뒤진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 하루 플로리다(오전 11시)→노스캐롤라이나(오후 3시)→펜실베이니아(오후 5시 30분)→뉴햄프셔(밤 8시)→미시간(밤 11시) 등 5개 주를 돌며 총력전을 펼쳤다. 막강 연합군을 동원한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는 마지막 날까지 '원맨 플레이'로 일관했다. 이날 트럼프의 동선에는 승리의 전제 조건인 플로리다를 다지고, 노스캐롤라이나·뉴햄프셔 등 시소게임을 벌이는 경합주를 차지하고, 클린턴을 맹렬하게 쫓는 펜실베이니아·미시간에서 기적을 일으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특히 자동차산업이 번창하다 쇠퇴한 미시간에선 "미국산 자동차가 지금 대부분 멕시코에서 만들어진다. 당신의 자동차사업이 도둑 맞았다. 내가 되찾아주마"라고 호소했다.

대선 결전의 날을 앞두고 주요 여론조사기관은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 7일 조사결과를 내놓은 주요 9개 기관 중 클린턴 우세를 점친 곳이 7곳, 트럼프 우세를 점친 곳이 2곳이었다. NBC뉴스(47% 대 41%)와 몬마우스대(50%대 44%)가 6%포인트차, CBS뉴스·폭스뉴스·워싱턴포스트가 4%포인트 차 클린턴 승리를 예견했다. 블룸버그·라스무센은 2~3%포인트 격차였다. 트럼프가 이길 것으로 전망한 곳은 LA타임스(43%대 48%), IBD·TIPP(41%대 43%)였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이 84%"라고 분석했다.

당선에 필요한 예상 선거인단 확보에서도 대다수 기관이 "클린턴이 당선에 필요한 과반(270명)을 확보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트럼프가 공화당 우세 주(215명)에 경합주 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뉴햄프셔를 모두 이긴다 해도 확보한 선거인단은 263명에 그친다"고 주장했다. 공영 라디오 NPR도 "클린턴은 이미 27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상황"이라며 "트럼프는 경합주를 다 이기고 민주당 우세지역 한 곳을 가져와야만 승리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러 기관 자료를 종합 분석해 예상치를 제시하는 정치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는 7일 예상 외의 추정치를 내놓았다. 이제까지의 경합주 13곳(171명)을 현재 우세한 후보에게 몰아 줄 경우 클린턴은 272명, 트럼프는 266명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왔다. 바꿔 말하면 3명만 트럼프가 가져와도 승부는 트럼프의 몫이 된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로선 뉴햄프셔(4명)·뉴멕시코(5명) 중 한 곳만 뺏어오면 승리가 가능하다. 이런 예측치는 사흘 전(4일)의 297(클린턴)대 241(트럼프)과 비교할 때 트럼프가 막판에 무섭게 추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날 오후까지 사전투표를 한 유권자는 28개 주 4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AP통신은 "최종적으로는 5000만 명을 넘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1996년부터 시작된 사전투표 제도 이후 최고를 기록했던 2008년(4600만 명)의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다. 폴리티코는 "사전투표의 45%는 민주당, 32%는 공화당, 23%는 무소속 성향으로 집계됐다"며 "이것만 놓고 보면 클린턴에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 언론들은 "이번 미 대선은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대선후보에 대한 비호감 ▶인종 및 성별 간 분열 심화 ▶워싱턴 기성정치에 대한 불만 고조로 아웃사이더 돌풍 ▶전통적 공화당 기반의 쇠퇴란 점에서 지금까지의 미 대선 양상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선거였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 모아 흥행 면에선 대성공이었다. 폴리티코는 "전국에서 투표를 위해 등록한 유권자 수가 2억 명을 넘어선 것(2억8만1377명)은 사상 최초"라며 "이는2008년 대선 때보다 5000만명, 비율로는 33%나 늘어난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장 급등

글로벌 증시는 ‘트럼프 리스크’ 감소를 환영했다. 7일 뉴욕 증시는 클린턴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 개장하자마자 급등했다. S&P500 지수가 2.22% 오르며 10거래일만에 반등한 것을 비롯해 다우·나스닥지수도 2% 이상 뛰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 옵션거래소의 변동성지수(VIX)는 전 거래일보다 16.48% 떨어졌다. 트럼프의 맹추격과 비례해 상승했던 안전자산들은 가격이 하락했다. 12월물 금 가격은 1.9% 내려 온스당 1279.4달러에 마감했다. 엔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1.4% 빠졌다.

워싱턴·뉴욕=김현기·이상렬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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