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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던 미 대선, 격변의 597일 드라마

중앙일보

입력

미국 정계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 버니 샌더스의 돌풍,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 재수사…. 지난 597일의 미 대선은 바람 잘 날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워싱턴 정치의 주류인 클린턴이 트럼프ㆍ샌더스라는 양대 바람에 휘청거렸던 게 최대 이변이었다. 클린턴 대 트럼프 대결로 압축됐지만 막판까지 대권 승리자를 예측하기 힘든 혼전이 계속됐다.

지난해 6월 16일 트럼프가 대권 도전을 선언했을 때만해도 큰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 16쪽 하단에 실리는데 그쳤다. 하지만 두 달 뒤 공화당 경선 첫 TV토론에서 트럼프는 단숨에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다. 사회자인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 메긴 켈리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자 토론 직후 “메긴의 신체 모든 곳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라며 메긴이 생리 중이라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것이란 뉘앙스를 풍겼다. 트럼프 ‘막말 퍼레이드’의 서막이 오른 순간이었다. 막말로 떴지만 불법 이민자 추방,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같은 트럼프 공약은 미국 사회에 누적된 불만을 정곡으로 찌르고 있었다. 백인 저소득층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넉 달 뒤 트럼프는 젭 부시, 테드 크루즈 등 막강 후보를 제치고 공화당 선두주자가 됐다.

트럼프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민주당에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돌풍을 일으켰다. 거물 클린턴을 상대로 무소속 샌더스가 도전장을 낸 격이었는데 클린턴의 독주 예상을 깨고 샌더스가 강하게 따라붙었다. ‘99%의 부가 상위 1%에 집중됐다’는 샌더스의 구호는 중산층과 젊은층을 파고들었다. 지난 6월까지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클린턴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주지사, 상ㆍ하원의원 등 수퍼대의원들이 대거 클린턴 편에 서며 샌더스를 압도했다. 클린턴은 7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공식 후보로 지명되며 주요 정당 첫 여성 대통령 후보라는 역사를 썼다. 그는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에 금을 냈다”고 선언했다.

앞서 그 달 21일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라크전에서 순직한 무슬림 미군 병사 비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며 8월까지 클린턴의 우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9월부터 클린턴과 트럼프에게 악재가 찾아오며 판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 시절 기밀 e메일을 개인 서버로 보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 뉴욕에서 열린 9ㆍ11 테러 15주기 추도행사 도중 클린턴이 어지럼증으로 휘청이며 건강이상설이 불거졌다. 트럼프는 “대통령을 하기엔 스태미나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가 1%포인트로 급격히 좁혀졌다. 그러나 10월 트럼프의 과거 음담패설 녹취록 파문이 터졌다. “스타가 되면 여성의 XX(성기를 지칭)를 움켜쥐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여성 비하 발언이 트럼프의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옥토버(10월) 서프라이즈는 따로 있었다. FBI가 대선을 열흘 앞두고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 재수사에 착수하자 트럼프의 맹추격이 시작됐다. 그런데 FBI가 대선을 이틀 앞두고 이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해 막판 최대 변수가 됐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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