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실패 땐 장외대치|3당총무합의 위반이다〃민정·〃조사기능 없으면 허울 뿐. - 신민|신민농성까지 부른 여야의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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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다룬 이번 단기임시국회의 최대의 결실로 기대되던 국회인권 특위가 여야 이견으로 불발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당초 여야총무들이 합의하기로는 박군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는 대신 인권특위를 국회에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인권특위구성에 관한 절차협의에 들어가면서 신민당측은 인권특위가「국정조사권에 준하는」조사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고 이에 대해 민정당측은 총무회담 합의 사항을 사실상 뒤집는「약속위반」이라고 빡빡하게 맞서 결국 신민당의원들이 철야농성을 하는 사태까지 빚게됐다.
민정·신민당의 인권특위에 대한 이 같은 대립이 회기 마지막날인 28일 중으로 절충되지 않으면 국회본회의는 결국 유회되고 인권특위는 무산될 수 밖에 없다.
신민당측의 국정조사 요구가 엄밀한 의미에서는 합의위반인 것은 틀림없다.
인권특위를 만들어 특위로서의 활동을 벌여가며 필요한 조사활동을 요구하는 것이 한가지 방법인데도 신민당측이 굳이 농성 등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재야의 따가운 시선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군사건의 심각성에 비춰 국회가 진상규명을 위해 적절한 조사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신민당측 요구가 정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민정당측이 합의사항만을 내세워 인권특위의 조사기능에 대해 사전보장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박군 사건에 대한 정부·여당측의 성실성을 의심받게 하는 처사라고 할 수도 있다.
만약 여야가 이런 절차적인 문제로 대립하여 인권특위구성에 끝내 실패한다면 결국 박군 사건을 정치적으로 수용하는데 실패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만약 국회가 정치적 충격흡수능력을 보이지 못하게 되면 이 사태는 양외로 떼밀려 나가지 않을 수 없고 그와 같은 장외대치는 정국을 버랑 끝으로 밀어낼지도 알 수 없다.
민정당측은 인권특위구성에 관한 신민당의 5개항 전제조건에 대해 지난 24일의 3당총무 합의사항을 위약했을뿐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강력히 반발하고있다.
국민당도 신민당이 위약했다는데 대해서는 동조하는 입장이다.
민정·국민당측은 지난 24일 3당 총무회담에서 김현규신민당총무가 여당측에 대해 국정조사권발동이나 인권특위설치 중 택일하여 한가지는 받아달라고 요구, 여당측이 인권특위를 선택함으로써 합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있다. 그때 이미 신민당측은 국정조사권을 포기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민정당측은 또 당시 김현규총무가 합의에 앞서 두 김씨와도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특히 김신민당총무가 김대중씨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김대중씨가 국정조사권의 발동은 박군 사건에 한정되는 한시적이고 단일적인 것인데 반해 인권특위는 상시적으로 인권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인권특위를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조언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김신민당총무의 두 김씨와의 협의는 총무회담장에서 민정·국민당총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두 김씨와의 전화통화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때 김신민당총무는 김대중씨의 의사를 존중, 동교동계의 이중재부총재와도 통화해서 재차 다짐을 받았다고 한다.
이한동민정·여용채국민당총무는 이런 과정을 겪고 합의했음에도 김신민당총무가 다시 전제조건을 달고 나오는건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민정당측은 특위활동기능과 방향은 특위가 구성되어 특위 내에서 결정할 수 있고 또 특위에서 타협이 안될 경우 그때 총무절충을 할 수도 있는 문제일 뿐 아니라 실제 조사활동을 해서 미진할 경우 국정조사권 발동안을 제출할 수 있는 문제인데 이를 구성전에 사전보장 하라는 건 무리라는 주장이다.
국정조사권은 본회의 의결이 있어야 발동이 가능하고 폐회 중 회의소집은 의장 또는 위원장이 할 수 있게 한 국회법이 있는 이상 사전에 국정조사를 보장하거나 3분의1의 요구로 회의 소집을 보장한다는 것은 법체계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정당측은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나아가 오는 2욀7일의 명동성당추모대회 등을 감안한다면 뭔가 원만한 수습책을 찾지 않을 수 없는 난감한 형편이다.
신민당측은 인권특위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국정조사권에 준하는 조사기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울뿐인 특위가 된다고 보고 그 같은 조사기능을 사전 보장받지 않는 한 이에 응할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다.
신민당의 이 같은 강경태도는 박군 사건으로 재야의 외풍이 드세지고 있어 「운신」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초 26일부터 12일간 회기로 국민당과 함께 국회를 공동 소집할 때만 해도 신민당측은 박군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권발동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것이 여야총무회담과정에서 회기가 3일로 줄었을 뿐 아니라 다시 국정조사권을 사실상 포기하는 댓가로 인권특위를 받아들이는 결과가 되자 동교동측과 재야측에서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동교동측에서는 신민당측이 박군사태와 관련해 「농성 한번 하지 않는」 안이한 태도임을 나무랐다는 것. 인권특위구성에 긍정적이었다는 상도동측에서도 그것이 국정조사기능을 갖지 않는다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 같은 불만에 부닥치자 신민당은 부랴부랴 인권특위를 상설로 하고 국정조사권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5개항의 조건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미 총무회담에서 국정조사권은 양보했으므로 「국정조사권에 준하는 조사기능」으로 표현을 바꿔 절충의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신민당측은 이와 같은 조건이 사전에 갖춰지지 않는다면 정부측이 특위의 고문현장조사, 관계관에 대한 심문 등을 거부할 수 있고 또 사태가 거북하게 꼬이면 여당이 아예 위원회소집을 못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위를 일단 설치하고 그후 조사문제 등을 논의할 수 있지 않느냐는 민정당측 제안에 대해서는 민정당측이 특위만 구성해서 노력하는 모습만 보이려 할 뿐 성의있게 특위를 운영하지 않으려 할게 분명하다고 주장하고있다.
그러나 신민당내부에는 이와 같은 대립사태가 자칫하면 모종의 「중대결단」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신민당측은 재야의 따가운 눈길과 여당의 강경벽 사이에서 엉거주춤 표류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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