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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들어주는 "고문피해" 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난 81년8월7일 경찰에 연행된후 18일 구속되고 28일 송치된 윤경화노파피살사건의 고숙종씨(51·여·서울대음대졸)는 검찰의 1, 2회 신문때까지 경찰에서 당한 고문의 공포가 남아 감히 범인이 아니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검찰에 가서 번복하면 5단계 전기고문을 하겠다』는 형사들의 협박이 악령처럼 몸과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3회조사때부터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주장했으나 검사는 범죄인들의 상투적 전술로 보고 고문얘기만 꺼내면 호통을 치고 묵살했다.
물론 검찰은 조서에 고문주장을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
『그레이스호텔과 용산경찰서 지하실 등 7곳을 11일간 끌려다니며 혹독한 고문을 당했읍니다. 수치심을 주기 위해 옷을 모두 벗긴뒤 양손을 뒤에서 수갑으로 채워놓고 욕탕에 거꾸로 집어넣는 물고문이 거듭됐지요. 수없이 실신했읍니다.
형사들이 전신을 구둣발로 짓밟았고 자백을 안하면 죽어나간다는 협박이 계속됐지요. 15일전인 사건당일의 행적을 정확히 기억못하는게 유일한 죄였지요.』
검찰은 호텔수사라는 편법과 장기구금을 묵인했고, 고씨를 송치받기전인 81년8월20일 검찰 스스로 그레이스호텔로 가 고씨의 「자백」을 녹음하기도 했다.
고씨는 그러나 법원에서 고문과 불법장기구금에 의한 허위 자백임을 인정받아 1,2,3심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81년8월의 전주시 비사벌자립원앞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구속됐다가 대법원계류중 진범이 잡혀 82년말 무죄판결을 받은 김시훈씨(34) 역시 마찬가지.
김씨는 검찰에 송치된 뒤 경찰조사과정에서 쇠파이프에 통닭처럼 매달린채 코에 고춧가루물을 붓는등 야만적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이를 무시했고 조서에도 그의 주장을 실어주지 않았다.
검찰조사과정의 피의자가 경찰등 일선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쇠귀에 경읽기」격이다.
아무리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해도 검찰조서에는 거의 기재해 주지 않으며 잘해야 「엄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나…」정도로 간단히 언급되고 넘어갈 뿐이기 때문이다.
재야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가혹행위수사에서 얻어진 자백의 편리함위에 안주하고 있기때문에 고문을 방조하는 셈이라고 말할 정도다.
해방후 지금까지 한번도 검찰이 수사기관의 고문행위를 적극적으로 인지(인지) 수사한 일이 없는 실정이고 「강박심리상태가 계속됐다면 검사앞에서의 자백도 임의성이 없다」라는 대법원판례까지 있는것을 보면 검찰수사도 불신을 받고 있기는 마찬가지.
검찰청법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수사에 관해 경찰관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다」(5조), 「경찰관이 직무집행에 관하여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는 해당사건의 수사를 중지하고 해당경찰관의 교체를 요구할수 있다」(36조)는 규정을 두어 검찰에 감독권한을 부여하고있다.
또 형법에는 검사의 인권옹호에 관한 직무집행을 방해하거나 그 명령을 준수하지않는 경찰관등을 5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인권옹호직무방해죄」(139조)까지 마련되어있다.
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수사업무 종사 공무원이 가혹행위·불법체포·감금 사실을 알고도 수사를 하지 않은 경우 1년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특수직무유기죄」(15조)를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같이 검찰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나 범법자의 처단, 인권옹호직무를 함께 맡고있는 최고의 수사기관으로 국가소추권을 독점하는 막강한 공권력을 갖고있기 때문에 경찰과 달리 준사법기관으로 불린다.
그러므로 검찰이 밀선수사기관에 대한 지휘·통제기능을 강화하고 기본권 보고책무를 성실히만 수행한다면 고문은 설 땅을 잃게되고 별다른 고문방지기구나 제도가 필요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관고문사건에 대한 인지수사는 고사하고 당사자들이 가해경찰관을 고소·고발해도 무혐의나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하는 소극적 자세를 보여온게 현실.
고숙종씨 사건의 경우 무죄판결후 가족들이 하영웅형사등 5명을 고문및 불법감금죄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호텔수사였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고 경찰이 불법구금한 것이 아니라 고씨가 임의로 진술에 응한 것이며 달리 고문을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렸었다.
또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권양(21)과 변호인단이 낸 가혹행외및 추행 고소 사건에 대해 검찰은 지난해 7월독직폭행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파면처분됐고 그간의 공적등을 참작한다」는 이유로 문귀동형사를 기소유예처분했었다.
형법상의 고문처벌조항인 「독직폭행죄」(125조)가 53년 형법제정이후 지금껏 유명무실한 조항이며 83년말 신설된 특가법상의 고문치사상죄(4조)가 이번 박종철군사건에서 처음 적용되었다는사실은 경찰관의 고문·가혹행위 처벌에 대한 검찰의 미온적 태도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이회창 전대법원판사가 퇴임때 밝힌 『당사자가 외치는 적절한 정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때 사법부는 신뢰를 되찾을수 있다』는 말에 검찰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경찰의 조그만 잘못이라도 그때그때 검찰이 바로 잡아왔더라면 권양이나 박군사건처럼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찰의 고문사실을 눈감아주고 처벌하지 않는것이 결코 검찰이 경찰을 도와주는것이 아니다. 이제는 무엇보다 검찰수사권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라며 우울해하는 한 검찰간부의 말은 많은것을 우리들에게 시사해주고있다. <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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